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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Oct 27. 2022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아이도 없지만 부족함도 없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집이 없다.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전세로 살고 있다. 어느 정도 대출을 받으면 으리으리한 아파트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정도는 구입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차도 없다. 대신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택시가 필요할 때는 거리, 비용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돌아보면 차를 소유했을 때보다 차를 소유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기회비용이 더 적었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도 없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각자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사정이야 이렇고 아내와 난 매일매일 수다 떨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아이도 없는 가난하고 이상한 부부로 보이는 것 같다. 가난의 정확한 기준은 알 수 없지만 집과 차가 기준이라면 확실히 가난한 게 맞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듣곤 한다


아이가 있어야 인생의 의미가 생겨
그래도 남자라면 차는 몰아야지
지금 집을 사야 나중에
집값 오를 때 돈 좀 벌지


아이가 없어도 인생의 의미는 다양한 곳에서 얻을 수 있고 굳이 차가 없어도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집이 없어도 절약과 저축으로 얼마든지 돈을 모으며 만족하며 살 수 있는데 나는 왜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들을 계속 들어야 할까.




대학교 다닐 때 연극과 함께 철학을 부전공을 하면서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진 주제가 ‘행복’이었다. 졸업 과정으로 쓴 학사 논문 주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행복론이었다. 행복의 철학적 정의인 에우다이모니아의 해석이 ‘잘 살기’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친 기억이 난다. 행복에 대한 이렇게 명쾌한 해석을 나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때 만들어진 질문은 대학생 시절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내가 삶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주곤 했다. 주변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내 멘탈을 즐겁게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질문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집과 차와 아이는 수많은 삶의 과정 중 하나일 뿐이며 필수 선택 코스도 아니다. 이 세가지를 선택한 사람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밤하늘의 별만큼 삶의 형태도 다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의 삶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준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그 마음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실천하면서도 궁색해지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재정적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행복의 조건은 의외로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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