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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Jul 22. 2020

나는 소셜 프라이빗존에 살고 싶다.

선넘기와 선지키기

대학생 시절, 일주일 동안 밤샘 작업을 하며 연극을 만들다가 동이 트는 새벽에 한 선배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삶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서로 한참을 웃은 적이 있다. 연습을 하던 작품은 '왕은 죽어가다'라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이었는데 연습 내내 '부조리'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매일 저녁 각종 자료들을 찾아보고 선배들, 동기들과 치열하게 이야기를 해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동이 트는 새벽, 자판기 커피, 퀭한 눈빛과 괴죄죄한 옷차림이라는 상황이 만나면서 갑자기 한 순간에 '부조리'가 무엇인지 이해가 됐다. 마침 옆에 있던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배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그 당시 우리들의 상황이 우스웠는지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함께 실컷 웃어버렸다. 부조리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아직까지도 그 순간의 짜릿함이 떠오른다.




삶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삶이 원인과 결과가 정확히 연결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삶이라는 녀석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게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말만 하더라도 우리는 문법에 맞게 말하는 경우가 없고 이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다른 맥락의 말을 하기도 한다. 생각의 흐름은 어떤가. 우리는 맥락에 맞게 사고하지 않는다. 마치 팝콘 터지듯이 나의 머리는 더 강력한 생각에 지배받는다.


가치관을 보더라도 일상적인 삶의 형태는 원칙을 키는 보수적인 면이 강해도 자기 업무 분야에서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한 사람과 한 순간에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죽도록 싫었던 사람이나 상황이 어느 순간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처음 부조리를 공부할 때는 '부조리'라는 말의 뉘앙스 때문에 부정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삶과 사회를 놓고 생각해보니 이것만큼 사회적 현상을 잘 설명하는 단어가 없었다. 삶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삶 자체로 부조리하다.




소셜 프라이빗존 - 이 단어를 설명하려고 하다보니 부조리가 떠올랐고 부조리에 대한 설명을 하다보니 내용이 길어졌다. 요즘 사회를 보다보면 어느 한 쪽에서는 선을 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무례한 선넘기를 문제가 되고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을 넘으면 안되지만 좀 더 강력한 유대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지나친 선긋기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해가 갈수록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만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온라인에서는 온갖 사적인 활동을 공유한다. 정말 부조리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부조리함은 사람들의 본능적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잘 맺고 싶으면서도 프라이버시는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면을 상상해보면서 '소셜 프라이빗존'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프라이빗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의 영역을 타인이 절대 건드리지 않기를 원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관계는 맺어질 수 없다. 소셜은 나의 정보와 타인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인데 이것만 있으면 개인의 삶은 공허함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소셜 프라이빗존'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존중하더라도 공개해도 괜찮은 최소한의 것들은 타인과 공유하며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개념이다. 왠지 말장난 같지만 삶은 원래 부조리하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소셜 프라이빗존에 살고 싶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잃어버리는 끈적끈적한 유대감도 싫고 타인을 잃어버릴 정도로 외로운 삶도 싫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선넘기와 선지키기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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