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렵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나고 서울이 다시 수복되자 나는 수도극장(서울극장) 앞 내가 예전에 일했던 양장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마을이 통째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놀랍지 않은 전쟁통의 혼잡함속에서도 내가 일전에 있었던 일터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일 년 동안 나뿐 아니라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했던 터라 시간은 우리가 떠난 바로 어제에 머물러 있었다. 어제 봤던 옆집 상점아저씨가 다시 보였고 중공군이 사용했을 법한 동네에서 가장 큰 서점은 건물이 그대로인 채 외관만 변형되어 있었다.
간혹 한참이 지나도 문이 다시 열리지 않는 방앗간집이나 국밥집도 있었다. 아마도 지긋지긋한 피난길에 질려 따뜻한 남쪽 나라에 곡창 지대에 자리를 잡고 모든 아픈 기억들을 잊으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리라.. 혹은 아마도 뼈가 아린 눈발을 맞으며 한 뼘 여유도 없는 차가운 기차 지붕 위에서 가는 숨을 멈췄으리라.. 다시 문을 열지 않는 상점들에 대해 우리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저 내일로, 앞으로 다시 나아가기만을 원했다.
우리 가게에서는 일반옷보다는 당시 배우들이 입는 옷을 주로 만들었다. 특별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영화에 필요한 전통궁중복과 양반두루마리를 만들고 단 한번 쓰릴옷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 동안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100년 전의 의상도 또 최신식의 양복 스타일도 모두 나에게는 흥미로운 연구의 주제이자 열정의 대상이었다. 그와 더불어 보너스 같은 즐거움이 주어지곤 했는데 그것은 바로 당시 인기가 높은 연예인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흥분했던 손님은 단연 당시 연애 중이었던 최고의 배우 신상옥, 최은희 씨였다. 한 번 그들의 의상을 제작해 준 뒤로 우리 양장점은 그들의 단골상점이 되었고 나는 치수며 디자인아이디어를 운운하며 세상에서 가장 젠틀하고 잘 생긴 신상옥을 한 뼘 거리에서 보고 만질 수 있었다. 기름기 없는 덥수룩한 머리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마치 하늘에서 임무를 띠고 내려온 천사장 같았다. 당연히 연애하는 최은희 씨가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나 그들이 함께 양장점을 방문할 때면 저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있을까 싶어 쓰린 마음을 내내 달래야 했다. 그들의 영화 중에 가장 기억나는 영화는 ‘꿈’이라는 영화였는데 스님이 유부녀를 사랑하는 꿈을 꾸게 되는 그야말로 꿈같은 스토리였다. 그러나 이미 영화의 ‘관계자’가 된 이상 내게 영화는 하나의 미션이었고 스님이 입은 옷이 얼마나 실제 같은 지, 신상옥 씨의 팔길이와 소매는 잘 맞는지 등이 나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영화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작은 종이 달린 양장점 문을 활기차게 열고 들어오는 팔짱 낀 두 배우의 눈부신 실루엣과 콩닥콩닥 뛰던 그때의 설렘을 선명히 기억한다.
또다시 몸서리쳐지는 피난이 찾아올까 마음속 불안을 깔끔히 밀어낼 수 없었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새로운 하루하루에 익숙해져 갔다. 다시 오면 안 될 비극의 그날은 이제 재연될 염려 없이 한 세기를 지나가고 있고 어렴풋해져 가는 나의 기억들이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되새겨줄 뿐이다. 세상일은 참으로 알 수가 없어서 나는 62년이 지난 지금 학원선생님의 악필로 처음 접했던 그 알파벳의 나라에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다. 배울 수 있는 교훈도, 한 톨의 의미도 찾기 힘든 동족끼리의 전쟁과 그와 휘말려 있는 나의 시간들을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무엇 때문일까. 더 이상 내 기억이 없어져 증발하기 전에 나는 나에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나의 20대는 이렇게 지나갔다고.
하늘에 올라가 넌 도대체 그 긴 시간 뭐 하며 살았냐는 질문을 받을 때 대답할 수 있게.
나는 그 시간들과 함께 흘러왔고 버텨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