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어릴 때 매주 주말 아침이면 엄마와 함께 집 근처
성당에 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붉은색 벽돌로 둘러싸인 벽과 차가운 대리석 바닥,
어둑한 실내로 빛이 스며들던 창문과 높은 천장.
겨울이면 패딩을 입고 있어야 했던 낡은 건물이었다.
노후화된 성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 편의 시설과 부속 건물이 늘어나면서
오래된 자재들은 현대적인 재료로 교체되었다.
새로운 모습이 주는 쾌적함 뒤로는, 익숙했던 옛 풍경을
잃은 듯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증축 공사로 회색의
콘크리트 외벽이 들어섰고, 실내 천장은 아늑한 목재였는데
층고가 낮았다. 옛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좋아했던 오래되고 낡은 벽돌의 붉은 색과
거칠했던 촉감이 일부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어린 소년의 시선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소년이 뛰어놀던 산과 바다의
풍경을 보면서 내게도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장소들을 떠올려 보았다. 다큐멘터리 장르인 영화는
한국계 일본인 건축가 유동룡 (예명: 이타미 준)
의 인생과 건축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님이
그에게 지어준 이름은 일본식이 아닌
한국 이름 세 글자였다. 일본 활자로 온전하게
표기할 수도 없었던 그의 이름엔 차별적인 시선이
항상 따라다녔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고스란히 작품 안에 스며들었다.
30대 후반에 도쿄의 <먹의 집>을 완성한 그는
자신을 ‘뭍과 바다 사이를 떠다니고 있는 존재’로 보았다.
깊은 어둠이 떠오르는 검은 벽과 내부는
자신의 고독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고백 같기도 했다. 실내 곳곳에 설치된
따뜻한 조명은 그늘진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건축가의 시선처럼 느껴졌다.
도쿄의 <TRUNK>는 어둡지만 소재의 강인함이 돋보였다.
운하에 가라앉은 목조 선박 자재, 철거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건물의 빛바랜 벽돌이 건축 재료로 사용되어 그늘진 공간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 클라이언트는 건물에 쓰였던 벽돌을 재사용했다. 건물의 자재는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손길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진과 영상, 내레이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의 바다는 제주의
땅에 닿아 있었다. 소년 시절 사랑했던
바닷가 마을 풍경이 제주와 닮아서였을까.
제주도의 <수·풍·석 미술관>은 빗줄기와 바람 소리,
원형의 빛을 통해 자연을 섬세하게 담아낸 공간이었다.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찰랑이는 물결,
바람에 휘청이는 갈대 소리,
단단한 돌 표면에 비추는 은은한 빛이
그 건물이 존재하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자연이 만들어낸 소리와 형태를 조용히 관찰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 같기도 했다.
영화의 이야기는 노을 진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점차 저물어간다.
땅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하늘로 여행을 떠난 그는
딸의 꿈에서도 여전한 건축가의 모습이었다.
천국국립미술관을 설계하느라 바빠
만나러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타미 준을 기억하는 가족, 동료, 고객은 그가 만든
건물과 집 안에서 여전히 따뜻한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를 사랑했던 다른 누군가의 기억으로
건축이 지닌 온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옛 성당 건물의 붉은 벽돌을 떠올리면
소환되는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