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때, 이 회사에 처음 몸을 담았다. 이 회사로 이직을 결심하고, 중간 휴식시간조차 없이 2월 28일 퇴사, 3월 1일 입사를 계획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 회사의 대표님은 이미 내가 입사 후 맡아야 할 프로젝트를 언질 해주셨는데, 누가 들어도 아는 한국의 대기업 브랜드였다. 새로 입사하는 직원에게 꽤나 큰 프로젝트를 맡긴다는 점에 왠지 인정받은 기분에 들떴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회사는 사람이 정말 급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에게 담당하게 될 클라이언트가 급하게 요청했으니 입사 전에 미리 연락만 좀 받아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크게 보면 동종업계이지만, 엄연히 다른 일을 하게 되는 이직이었다. 전통광고업에서 디지털마케팅으로의 이직이었으니, 이 회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바로 클라이언트를 응대하기는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아직 업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는 얘기는 깔끔하게 무시당하고, 중국에 살면 당연히 응대할 수 있다는 대답과 함께 혹시 답하기 어려운 것은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물어보면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그냥 담당자라고 소개하면 된다고 하며, 그냥 인사하는 거라며 별일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왔다.
그렇게 입사 2주 전, 나는 담당 클라이언트가 생겨버렸다. 계약서도, 급여도, 명함도 없이.
그래, 어쩌면 그때 끊어냈어야 할 인연이었다.
내 연락처는 빠르게 고객사 담당자에게 넘어갔고, 내가 인계받기 전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도 모른 채로 질문세례를 받았다. 내가 진정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는 말투와 태도까지 같이. 역시나, 안내받은 것과는 다르게 쏟아지는 질문은 업무 히스토리를 모르는 내가 당장 대답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열심히 대답한 다음, 메신저로 요청사항을 한번 더 남겨주시면 확인 후 빠르게 피드백을 드리겠다는 대답만 할 수 있었다.
이미 수정이 몇 번은 왔다갔다한 흔적이 있는 계약서 파일 피드백 요청, 지난 프로젝트 계약과 이번 계약의 달라진 점 비교 요청, 새로 시작될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과 타임라인 작성까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들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새로 입사할 회사에서 맡은 첫 프로젝트에 재를 뿌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전 회사의 눈치를 보며 점심시간, 퇴근 후에 프로젝트 인수인계를 받고, 언제든 본인이 급하면 걸려오는 고객사의 전화를 받기 위해 몇 번이고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렇다, 정식으로 입사도 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이쯤 되니 커뮤니티나 SNS에서 꽤나 자주보이는 중소기업 관련 질문이 생각난다.
입사 전 프로젝트 인수인계를 받으라는데 이 회사 괜찮은가요?
아니요, 안 괜찮습니다.
정식입사 전 업무를 배정하여 참여시키는 회사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당장 사람이 미친 듯이 급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 일에 대해 열심히 인수인계해 줄 담당자가 이미 없을 수도 있다. 혹은 그 프로젝트에 뭔가 큰 문제가 생겨 새로운 방식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어느 상황이던 새로운 회사로 자리를 옮겨 처음으로 직면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