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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Jul 03. 2024

"지나 보니 이만한 회사 없더라고요" by. 퇴사자

그래도 돌아가기는 싫습니다


젊은 조직이라고 포장되었던 회사, 대부분의 직원들이 나이대가 비슷한 사회초년생들이었다. 우리 팀원들만 봐도 인턴을 제외하고는 타직장 경험이 있는 직원이 1명밖에 없었다. 본부 전체를 봐도 타직장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전체 직원의 20%를 넘지 않았던 듯하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인턴부터 정직원 직장생활을 시작한 직원들도 몇몇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첫 회사생활을 시작한 동료들은 다 같이 울고 웃고 지지고 볶다가 3-4년에 걸쳐 한두 명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에 몸 담고 있던 6년의 기간을 온전히 같이 한 사람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나도, 그들도, 이젠 어엿한 '사회친구'가 되어 사회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고, 가끔 만나 술도 한잔 기울이고, 아직도 '그때 그 회사'에 몸 담고 있는 이를 통해 친정집의 현황은 어떤지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다 같이 얘기하다 보면 나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있다.

"이제와 보니 그만한 회사가 없더라고요~ 사람들도 좋았고, 일하는 분위기도 좋았고요"


여기까지 참 좋다. 그다음 이어지는 한마디를 빼면.

"그래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약간 '좋은 추억'으로만 묻어두고 싶달까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여러 회사를 다녀보니 참 미친놈도 많고, 다시 입에 담기 싫을 정도로 이상한 회사도 많더라. 돌아보니 그때가 참 좋았다. 그렇지만 다시 그 좋았던 회사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냥 추억으로 떠올리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름대로 값진 경험'이었나 보다.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아리송하기도 하다. 그저 지나온 과거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 현실에 있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미화되었기 때문일까?


그들이 입을 맞춰 '그래도 좋았다'라고 말하는 점들을 되짚어봤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좋았어요.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업무 분위기도요."

업무 상 협조를 얻거나 소통으로 인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힘들게 하는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주는 해소감이 더 컸다고 해석된다. 마케팅이나 광고업을 하다 보면 많이들 느끼는 부분이다. 공공의 적(클라이언트)이 외부에 있으니, 그 적을 상대하는 동료들은 동지가 된다. 일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일부 동료들이 있지만, 그래도 외부의 적보다는 1% 정도는 나은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처럼 팀이 비교적 작고 때로는 나이가 비슷한 팀장 혹은 상사가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극단적으로 다 같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지'가 되거나, 그 사람에 질려 떠날 정도로 '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인 듯하다.


화려한 포트폴리오보다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반짝이는 눈빛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채용하다 보면,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몇몇의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면, 마지못해 눈치 보며 따라오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지금 와서 '이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때 이미 본인도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해볼 수 있는 일이 정말 다양했고, 원한다면 충분히 개인역량 성장이 가능했죠."

성장에 목마른 사람들 혹은 다소 긍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원하는 일에 눈치 보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면 무슨 일이든 다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게 말해 '멀티플레이어'이다. 마케팅 AE가 빅데이터 추출에 참여하기도 하고, 관광상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VR콘텐츠를 촬영하러 나가기도 하며, 방송제작 프로그램 제작팀에 참여도 한다.


중소기업에서는 정확한 R&R을 나누는 것이 평생의 과제이다. '내 일, 네 일' 선을 나눌 수 있는 일이 굉장히 적다. 반면, 급할 때 어디서 손 하나라도 빌려오는 게 중요해서, R&R이 정확히 나눠져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제 일이 아닌데 왜 참여해야 하죠?'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솔직히 회사는 '새로운 프로젝트 커리어'라는 겉포장을 씌워 끊임없이 직원들을 새로운 일에 참여시키고, 멀티플레이어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대한 과제였다. 다른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바뀔 수 없는 상황을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도구로 잘 사용한 사람들이 결국은 가장 승자인 거다.




"꼰대도 없었고, 실적과 성과에 대한 '찍어내리는 압박'이 없었던 건 편했죠."

모든 중소기업이 모두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이건 분명히, 그리고 명백히 경영진의 비즈니스 스타일에서 비롯된 이 회사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다.

꼰대문화가 없다는 점은 '연령대가 높은 직원' 자체가 적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젊 꼰(젊은 꼰대)'는 어디에 가나 있지만, 전반적으로 비중이 매우 낮았기에 동료들은 회사에 꼰대가 없었다고 기억한다.


실적과 성과에 대한 압박이 없었다는 것은 회사가 수익과 이윤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굴러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건 결국 꼭 남기고 싶은 직원들을 잡을 '재원(财源)'조차 없는 회사가 되는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회사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실적압박을 하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다. 다만, 회사는 '수익'을 내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고 또 업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곳간'이기 때문이다.

답도 없는 상황에서 무의미안 압박을 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실적과 성과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그에 대한 기여도와 '열매'를 나눠먹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적압박은 없지만, 매일 바쁘고, 계속 돈이 없는 회사는 결국 마음 불편한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서로 돕는 분위기와 좋은 동료들'을 만든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기준이 모호한 인센티브제도가 만들어졌을 땐, 회사동료들끼리 서로 경쟁하기 바빴다. 실적이 되고 난도가 낮은 일은 본인이 담당하고, 품은 많이 들고 매출액이 적은 프로젝트를 몇 년째 맡고 있는 팀원들, 본인의 인센티브율을 슬쩍 건네며 상대동료의 성과급을 물어보는 직원.... 그래서 저 당시의 성과급은 '아무도 받지 못하는 신기루'가 되어 버렸다. 조금 더 정확한 기준의 인센티브제도가 다시 생기는 데에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입을 맞춰 회사가 좋았다고 말한 점들, 이게 정말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인지 더 큰 의문이 든다.



사람이 좋았다는 점은 체계보다는 '사람'에 의존했다는거다.

 

해볼 수 있는 일이 다양했다는 점은 R&R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시켰다 거다.


실적압박이 없었다는 점은 회사의 '인풋(인력) 대비 아웃풋(실적)'을 관리하지 못했다거다.




하나 확실한 점은 회사가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 때가 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좋은 사람들을 오래 잡아 놓을 수도 다시 불러다 앉혀놓을 수도 없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할 수 있는 한때에 몸 담았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지금도 누군가에겐 '그때'가 되고 있을 회사에 화이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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