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이리엔 Aug 07. 2024

회사에 CCTV 달아야 한다니까요!

에피소드를 기록할 수 있다면 


회사에 CCTV를 달다. 


이 문장만 보면 회사의 업무 감시, 직원 인권 침해 같은 무시무시한 이슈가 떠오른다. 회사에 CCTV를 설치한다는 건 단순 보안상의 문제를 넘어서, 직원에 대한 감시라고 생각되는 것이 당연하다. 


나와 동료들은 오랜 기간 동안 회사에 CCTV를 달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왜 직원들이 CCTV를 달자고 하는 건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CCTV가 필요했던 이유는 꽤나 특별하다.

회사에서 직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 특히나 대표님의 기괴한 모먼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대표님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괴짜'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스마트하고,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하고, 당연히 거짓말도 하고, 자주 허둥거리신다. 오죽하면 대표님의 인사, 즉 대화를 시작하는 첫마디는 "아, 미안미안"이라고 할 정도로 하루종일 정신없으시다. 그래서, 일단 본인이 말 걸고 정신없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짱구(대표)의 하루'이다...




우당탕탕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기억나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보려 한다. 



1. 님아 제발 그 문을 열지 마오

대표님은 차분하다는 단어와 반대편에 서있는 분이다. 하루종일 울려대는 전화벨, 카톡 소리... 정말 하루 종일 통화를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이 발로 뛰는 영업형 대표인 것을 선호하셔서 그런 건지, 전화통화 횟수는 내가 본 이래 줄어든 적이 없다. 목소리도 쩌렁쩌렁 크신 데다, 전화를 계속 받으시니, 사무실에서 계속 전화를 받으시면 직원들은 당연히 정신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대표님의 통화 습관이다. 대표님은 뭔갈 떠올려야 할 때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계속 반복해서 움직이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대표님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반복해서 오가는 모습만 봐도, 지금 통화내용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에 대한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을 이리저리 걸어다는 것은 그나마 낫다. 통화 내용이 굉장히 심각한 거라면, 그냥 걸어다는 것 정도로는 대표님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나 보다. 그때부턴 대표실 문을 수도 없이 열었다 닫았다 하신다. 정말 10분 정도 시간에 문을 30번도 더 열고 닫는다고 보면 된다. 문을 반쯤 열고 몸도 반쯤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다시 문을 반쯤 열고, 다시 닫고....


어느 날, 대표실 문 앞에 앉는 직원 참다못해 대표님께 너무 정신이 없다고 웃으며 한탄했다. 대표님은 당연히 "아 미안미안"이라며 문을 열지 않겠다고 하셨다. 물론, 그 약조는 30분을 넘기지 못했다. 








2. 저 아직 차에 다 안 탔는데요...

클라이언트 미팅을 다닐 땐 대부분 대표님의 차량을 이용한다. 대표가 직접 운전하고, 직원들은 조수석과 뒷좌석에 나눠 탄다. 회사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대표님 차를 타기 싫어하는데, 단순히 생각하는 '어색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다. 차분하지 못한데 전화가 끊임없이 오는 운전자의 차에 타면, 어느 누구라도 멀미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몇의 직원들은 보도블록을 들이받거나, 끼어들기 사고위험을 직접 겪은 적이 있어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한다. 나도 몇 번이나 사고위험이 있었거나, 대표님! 하고 소리를 질러 사고를 막은 적이 있다. 


평범한 어느 미팅이 끝나고 주차장에서 대표님의 차를 타고 회사로 복귀하려던 찰나였다. 같이 간 동료가 조수석에 타고, 대표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에 타기 전부터 전화통화를 하고 계셨다. 나는 빙 돌아 뒷좌석으로 가 문을 열고, 몸을 반쯤 넣었다. 그때 갑자기 차가 출발했다. 


"으악, 저 아직 안 탔어요!!!!" 

끼익 - 

"아 미안미안!! 탄 줄 알았어!!!" 


정말, 회사로 돌아가는 내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이런 일들이 일상에서 툭툭 발생하다 보니, 우리끼리는 CCTV를 달아서 '얼렁뚱땅 대표의 하루'라는 유튜브를 만들어야 된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표님은 항상 시끄럽고, 정신없고, 황당하지만 그래도 가끔 나사하나 빠진 사람 같은 사건들이 일어날 때면, 직원들은 이 일을 몇 달간 아니 몇 년간 회자하며 배꼽을 잡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대표님만 기록하고 싶던 게 아니다. 

동료들과 작은 일에도 웃고 떠들고, 같이 화내고 욕하던 일상들이 CCTV에 담겨, 우리의 이야기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은 잊어버린 그 시간들을 CCTV 기록처럼 돌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직장이 이렇게 소소한 웃음과 에피소드가 가득한 것은 아니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