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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Aug 14. 2024

연봉협상이라는 전쟁터와 무기

대단한 반전은 없었으나, 건방진 태도는 건졌다

회사생활 중, 직장인이 가장 긴장하고 기대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단연 '연봉협상'일 것이다. 내 몸값을 평가받고 또 제시하는 시간. 이때의 승패 혹은 일방적 통보 결과에 따라, 일년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나의 출근 의지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마음을 가지고 연봉협상에 들어간다.


나에겐 두가지 이유로 연봉협상 시즌이 정말 지옥같이 느껴지곤 했다.


당연히 내 연봉 인상률에 대한 걱정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최선을 결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연봉협상은 언제하든 그냥 끝내기만 하면 되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나머지 이유는 팀원들의 퇴사 때문이다. 연봉협상 시즌이 끝나면, 빠르면 협상 후 바로, 조금 늦으면 한달 뒤부터 사직서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은 대표님과 연봉협상 미팅을 하러 들어갔던 팀원이 정말 엉엉 울면서 나와 바로 퇴근을 시킨적도 있었고, 연봉협상이 끝나면 개인메시지로 나에게 '개인면담'을 추가로 요청하는 미팅요청이 쏟아졌다.



회사의 상황이 어려우니 올해는 정말 많이 올려줄 수 없다. 이해를 부탁한다. 하지만, 하반기나 내년엔 정말 좋아질 것 같으니 그때 보상을 해주겠다.



이런 사측입장이 반복되다보니, 코로나19 직전에 입사하여 3-4년차 경력을 쌓아가는 주니어 직원들은 같은 이유를 세번이나 다시 들으며 최소 인상률 적용 혹은 6개월 뒤 다시 협상 같은 결과를 들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계속 같은 이유로 낮은 인상률을 적용하다보니, 건보료 인상까지 겹친 연도에는 월별 실수령액이 전년도보다 줄어드는 직원도 생겼다. 인상률은 결국 퍼센테이지이기 때문에, 연봉의 모수가 적으면 낮은 인상률이 정말 미미해진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연봉협상을 위한 준비, 그 허무함

그렇게 연봉협상 시즌에는 온갖 추측과 앞뒤에서 오가는 카더라 소식들, 정말 모두 이런 인상률을 통보 받은 것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질문들이 난무했다.


어차피 회사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인상률을 맞춰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 그래서 제대로된 평가기준을 세우고 팀별 혹은 직급별로 평가결과에 따른 연봉인상률을 정하고, 그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직원들이 '성과'를 보이려 노력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이슈가 반복되자 직원들은 회사가 그런 정확하고 투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신뢰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 또한 저렇게 제대로 된 기준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온갖 방법이라도 동원하여 팀원들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인상률을 쟁취했으면 했다.


그래서 연봉협상 전, 경영진에게 팀원별 인사평가표를 제출하고 나면  팀원들과 개인면담을 진행했다. 1년간의 주요실적, 매출성과, 고객관리성과, 내부 프로세스 개선 참여, 신규사업 지원 등 경영진에게 어필할만한 내용을 같이 훑어보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준비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누군가는 야심차게 A4용지 몇 장을 뽑아들고 들어갔고, 누군가는 해야할 말을 종이에 빼곡히 적어서 들어갔다.


우리 모두 나름대로 연봉협상이라는 전쟁터에 들어가기 위한 무기를 만드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다. 결국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연봉협상 전쟁에서 조져지는 것은 항상 직원이었다.


무기들은 잠시 공감이나 칭찬을 받는 도구일뿐, 성과 높은 직원과 일반적인 직원이 거의 비슷한 결과를 받아들었다.


심지어는 '퇴사 협박' 카드를 슬쩍 꺼내드는 교묘한 스킬을 쓰는 직원들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게 연봉협상 전쟁터는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갔다.




그래서 저는요...


사실 나는 연봉협상 면담에서 경영진과 협상을 해본적이 없었다. 내 생각에 회사는 항상 회사입장에서 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납득할만한 인상률이었고, 조금 마음에 들지 않을때에도 회사가 힘든시기를 겪어내고 있는데, 연봉인상률이 뭐 얼마나 의미가 있냐는 건방진 생각까지도 했다. (물론, 매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 그때에 나에게 돌아가 뺨이라도 때리고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싶다.)



연봉협상의 스킬, 연봉협상 준비, 평균인상률과 최대인상률 등등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연봉협상 꿀팁' 정보는 많다. 누구든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때, 혹은 매년 연봉협상시즌에 저런 콘텐츠를 찾아봤으리라. 돌아보면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꿀팁들과 반대로 움직인 것 같다.


내가 찾은 무기는 '태연함' 그리고 '공감' 이었다. 일단 회사에서 더 높은 인상률을 제시해줄 수 없다고 판단되면, 나는 연봉협상 자리를 내가 '돈에 꽤나 의연한 사람인 것'으로 포장하고, '회사의 어려움을 뼛속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같이 견뎌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연기했다.  


'돈에 꽤나 의연한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던 이유는 언젠가 정말 퇴직을 걸고서라도 회사와 '협상'해야 할 때, 쟤가 단순히 월급이나 성과급 좀 더 받겠다고 난리치는게 아니겠구나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했다.


'회사의 어려움을 뼛속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같이 견뎌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던 이유는 '조건'이 안 맞으면 언제든 회사를 떠날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어라? 얘는 일도 열심히 하고, 책임감도 있고, 조건에만 연연하지 않고, 심지어 애사심도 있네!?"


회사가 이렇게 생각하면 '오래 남겨두고 싶은 사람'이라고 여길 것 같았다. 그럼 결국 더 중요한 일에 한번 더 나를 떠올리고, 힘든 시기에 최대한 조건을 맞춰서라도 잡아놓고 싶을거라고, 장기적으론 결국 더 좋은 결과가 생길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직원으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이 결론적으로 좋았는지 나빴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직장인은 '월급'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금은 건방지고 어리석은 나의 결정이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연봉협상의 전쟁터에 다시 나가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실력있는 '관우'같은 장수가 되어 '냉철함'까지 갖춰서 심화된 필살기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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