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이리엔 Aug 28. 2024

점심이지만 술 한 잔 할래요?

취기 오른 직장인을 조심해

일을 하다 보면 유난히 많이 바쁜 기간이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프로젝트로 오래 달리기를 하는 프로젝트도 힘들지만, 끝이 정 해져 있어서 단거리 달리기를 해야 하는 경우는 퇴근을 포기하기도 일쑤였다.



처음엔 샤워하고 간단한 메이크업을 하고 오던 동료들이 점점 머리는 감되 메이크업은 생략하고, 막바지에 가서는 그냥 모자를 쓰고 출근하게 된다. 새벽에 같이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동료와 마지막 인사는 "내일 봐요"가 아니라 "이따 봐요"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고, 집에서는 샤워만 하고 나오는 수준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아주 잠시 숨 돌릴 시간이 주어지곤 한다.

이런 시점에 회서는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보낸 뒤, 시간에 상관없이 바로 퇴근하도록 지침을 내리곤 한다. 문제는 다른 일들로 인해 당장 퇴근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피곤함은 며칠 동안 내성이 생겨 좀 참을 만 하지만, 드디어 지긋지긋한 일을 끝냈다는 기쁨을 누릴 수도 없이 다시 다른 업무를 한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사실상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을 다 참고 견뎌온 시간이기에 그 해방감을 잘 즐겨줘야 다시 원래의 업무로 잘 복귀할 수 있다.





혹시라도 프로젝트 종료의 기쁨에도 바로 퇴근을 할 수 없는 날이면, 며칠 밤을 같이 새운 동료 몇몇과 점심이라도 같이 먹곤 한다. 정말 사무실에 다시 돌아가 앉아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 주문하자마자 격앙된 소리로 외친다.


"저는 맥주 한 잔 하려고요! 사장님, 카스 한 병 주세요!"


이때 자리에 있는 동료들의 반응으로 우리가 얼마나 같이 일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1단계 : 같이 고강도 프로젝트 처음 해봄

"엇...우와... 회사 돌아가야 하는데 마셔도 되나요...?"



2단계 : 몇 번 같이 고강도 프로젝트 해봄

"음..그럼 저도 한잔만 마실래요"



3단계 : 자주 이런 상황 겪어봄

(조용히 잔을 세팅한다. 물론 본인 잔도 같이.)



특이단계 : 그냥 익숙함

"저는 막걸리 마실게요"

 






생각해 보면 단순히 저 순간에 술을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작은 일탈'로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이러한 작은 일탈이라도 있어야, 다시 돌아가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매우 가까운 어느 식당에 자리 잡고 맥주 한두 잔에 곰탕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면, 살짝 오른 취기에 기대 다시 집중해서 일을 마무리했다.


아, 물론 아무도 서로 마시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할 술도 아깝다.



회사가 굉장히 자유로운 편인지라 야근을 할 때엔 눈치껏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 꺼내놓고 마시면서 해도 괜찮다. 해외지사에서 근무할 땐, 한 달에 한번 대표님이 출장 오시는 날엔 대표님과 직원들이 같이 점심에 매콤한 쌀국수를 먹으러 가서 맥주를 한잔씩 나눠 마시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한 번씩 그런 날들이 생각난다. 그냥 일찍 퇴근했다면, 정상적인 분량의 업무만 했다면, 아예 있지도 않았을 일들이다. 동료들과 한 잔 하고 싶다면 같이 정시퇴근하고 맥주집을 갔으면 됐다. 참 이상하다.



아마도 같이 고생한 사람들과 작은 일탈의 비밀을 나눠가졌다는 이 비밀스러운 느낌이 좋아서일까?

이전 10화 퇴근길 카풀하는 대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