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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Oct 02. 2024

이게 회사인지, 유치원인지

불필요한 규정이 만들어지는 이유



우리 회사는 불과 1년 전까지도 총무팀, 경영지원팀이 따로 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급한 비품구매부터 청소업체 위탁범위 선정까지도 실무진 팀장이 관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분리수거 규칙 정하기와 교육'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워낙 별별 회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다 해봤지만, 분리수거 이슈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모든 고정비용을 아껴야 하는 중소기업 특성상, 우리는 청소업체에게 쓰레기 버리기까지 맡기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 청소와 바닥청소만 위탁해도, 월간 비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랜 가격비교 끝에 탕비실 청소는 직원들이 직접 하도록 결정되었다. 모든 층에 위치한 탕비실에는 개수대, 정수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분리수거함, 일회용품 혹은 다회용 식기구가 배치되어 있다.  


각 층마다 쓰레기봉투가 꽉 차면 갈아 끼우고, 점심식사나 퇴근 시 배출하라고 공지했다. 나름 신경 쓴다고 일반쓰레기/재활용/음식물 쓰레기의 배출장소와 배출요일도 잘 적어서 탕비실 안에 붙여놓았다. 쓰레기는 회사 문 앞에 바로 놓아두면 되어서, 쓰레기를 들고 멀리 걸어갈 필요도 없었다. 자율적으로는 관리가 되지 않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그래도 다들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인데 일단 자율적으로 정리하도록 해보자는 편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욕을 하고 싶다)




게을러도 창의적이긴 하네


여름철 가장 핫한 재활용 '플라스틱' 재활용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플라스틱 컵으로 채워진 재활용 봉투는 컵이 흘러내릴 정도로 있어도 아무도 버리지 않았다. 몇몇 깔끔한 성격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몇 번씩 치웠지만, 이내 본인들만 계속 치운다는 것을 알고 불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도 출근하자마자 탕비실에 들어가, 재활용/일반쓰레기봉투를 점검하고 새로 갈아 끼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안에서 부스럭대고 있으면, 어떤 직원들은 빠르게 들어와서 같이 치우자고 손을 보탰다. 하지만 역시 치우는 사람만 치우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꽉 찬 플라스틱 재활용 봉투 앞에 누군가 컵을 세워놓은 것을 봤다. 봉투를 새로 갈아 끼울 생각은 안 하고, 꽉 차있는 봉투 밖 바닥에 컵을 세워놓은 것이다. 왠지 그날따라 치우고자 하는 마음이 안 생겼다. 내가 지금 유치원생이랑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그날 밤 직원들이 꽤나 많이 퇴근하고 난 뒤, 나도 마지막으로 탕비실에 다시 들어갔고, 정말 경악했다. 세워진 컵 위로 몇십 개의 컵이 겹겹이 높이 세워져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 많은 직원들이 아무도 그 봉지를 새로 갈아 끼울 생각을 하지 않고, 봉지 밖에 세워진 컵에 그냥 탑을 쌓은 것이다.  



더 이상은 그대로 놔둘 수 없어, 분리수거함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분리수거 담당 및 규칙 정하기'를 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자율적 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당번을 정하고 페널티를 줄 수밖에 없다. 애들도 아니고 왜 이런 것까지 다 규칙을 만드나 싶었던 것들은 사실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는 매 층마다 1주일씩 돌아가며 청소하는 '탕비실 청소 당번과 페널티 규정'이 생겼다. 



탕비실 청소 규정을 공지했을 때, 물론 여러 반응이 있었다. 왜 탕비실 청소를 우리가 직접 하냐, 청소업체에 위탁하면 안 되냐, 나는 자주 치웠었는데 왜 이렇게 강제로 시키냐 등등..... 사실 이미 소용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청소업체에 맡길 수 없는 환경인 것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거고, 번거로운 규칙과 페널티가 생기기 전에 눈에 보일 때만이라도 조금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출처 : MBC, 무한도전





과대평가해서 넘겨짚지 말자

회사를 다니면서 절대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정한 것이 있다. 


"다들 이 정도는 하겠지"라고 넘겨짚는 것


R&R을 나눠 업무를 할 때에도, 종이 한 장을 복사해 달라고 부탁할 때도, 심지어는 밥 먹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때도 말이다. 개개인에게 '이 정도'라는 기준은 모호하고, 기준이 모두 같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의 생각을 기준으로 놓고, 다들 당연히 눈에 보이면 치울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물론, 탕비실을 좀 무책임하게 관리했다고 그들이 미웠던 것은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회사, 유치원, 초등학교, 사회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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