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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Oct 18. 2024

백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팀장님, 면담 신청할게요."


내가 요청을 하는 것도, 남에게 요청을 받는 것도 끔찍하게 싫은 것이 있다. 바로 개인면담이다. 


원온원 미팅, 다대다 면담 등등 '면담'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글은 지겹게도 봤다. 면담을 왜 해야 하는지, 면담의 내용과 피드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싫다.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토픽이 정해진 면담이나, 사전에 논의할 주제가 정해진 면담은 그나마 낫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가장 무서운 것은 갑작스럽게 요청받는 당일면담이다. 특히, 퇴근 직전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냐는 면담이 가장 두렵다. 면담이 끝나고 얼굴 보기가 껄끄러워, 바로 사무실을 떠나고자 하는 주제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면담요청 그야말로 '카오스'이다. 

당장 시간이 있어도 일부러 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면담일정을 잡는다. 엄청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명탐정 코난 혹은 셜록홈즈처럼 혼자만의 외로운 추리를 시작한다. 면담을 요청한 팀원과 최근 나눴던 대화, 해당 팀원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 단톡방, 심지어는 오늘 점심을 먹을 토픽이 뭐였는지까지 곱씹어봐야 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진행되는 면담의 주제는 대부분 비슷하다. 결론은 대부분 퇴사 아니면 휴직이다. 

업무에 대한 불만이나 협업하는 동료에 대한 불만은 일반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꾹꾹 참는 성격의 사람이어도, 협업회의나 업무 메신저방에서 문제가 눈에 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가 눈에 띄면, 그 문제에 대해 팀원에게 먼저 질문을 던짐으로써 중간중간 솔루션을 논의하기에 단순히 실무적인 이슈로 면담요청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짧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퇴사나 휴직이라는 최악의 토픽이 나올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면담에 들어간다. 정말 도살장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어색한 분위기와 침묵을 숨 막혀하는 성격은 이럴 때 더욱 약점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이 면담 분위기의 주도권은 무조건 팀장이 가져와야 한다. 면담 분위기에 따라, 나누는 얘기의 온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고객사나 내부 협업팀에 대한 고충을 묻거나, 최근에 가장 바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묻는다. 그렇게 그들이 준비해 온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전에, 우리는 같은 편이고, 같은 고충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경계를 먼저 만들어 놓는 시간이다. 


그리고 정말 묻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결국 꺼낸다. 무슨 이유로 면담을 하자고 했느냐는 것. 



퇴사에 대한 이야기일 확률이 8할 정도 된다. (그게 아닌 경우엔 더 이상 평온한 연기를 할 수 없어 "푸하! 퇴사한다는 줄 알고 놀랐잖아요..."라는 말을 내뱉어버린다. 그때부턴 뭐든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이때 퇴로는 한 가지밖에 없다. 어떻게든 퇴사를 고민하는 진짜 이유를 들어보는 것. 그것만이 꼭 잡아두고 싶은 사람을 잡을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길이다. 꼭 잡고 싶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퇴사의 사유를 정확히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회사의 곪아가는 포인트는 항상 이런 곳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여러 번의 질문과 공감, 그리고 나름대로의 변론을 하다 보면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이 퇴사를 결정한 문제를 제대로 알아들었을 때. 그때, 그들은 퇴사까지 결심한 이 문제를 제대로 알고 같이 해결해 볼 만한 사람이 생겼나 싶은 작디작은 희망을 잠시 가진다. 이때가 기회이다. 



물론, 가장 큰 난제는 이 문제점을 안다고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혼자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이 대부분일뿐더러, 어쩔 땐 그 문제의 중심에 결국 당신도 있노라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돌아보면 회사생활 중, 머리가 가장 빨리 팽팽 돌아가는 때는 이 시점인 것 같다. 


이 사람의 성격, 업무방식, 업무경력, 회사에서의 역할, 커뮤니케이션 방식부터 친하게 지내는 동료, 심지어는 담당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밸류까지. 정말 온갖 것들을 꺼내와 생각을 섞어본다. 



- 한번 더 고민해 볼 여지를 만들어보려면, 이 사람에게 어떤 밸류를 줘야 할까? 

- 아직 회사에도 도전적인 밸류가 있다고 강조해 보려면, 확신 있는 말투로 전달하는 게 좋겠지?

- 내 선에서 조율해서 단기간에 밸류를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는 업무가 뭐지?

..... 



팀원의 입에서 일단 조금 더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대답이 나오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느 정도 기간을 가지고 다음 면담을 할지, 내가 먼저 조치를 취하고 공유를 해줄 것들은 무엇인지 차분히 정리를 하고 회의실을 나서면 끝이다. 




이렇게 복기해 보니 면담이 두려운 이유가 명확해졌다.

각기 다른 사람이 다른 이유로 매번 신선한 토픽을 가지고 와서이다. 예측할 수도 없는 경우의 수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니, 떨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대단하다. 


때로는 서로 같은 목표로, 때로는 서로 다른 목표로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까지도 주저리주저리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같이 웃으며 나올 때도 있고, 같이 눈이 벌겋게 팅팅 부어 나올 때도 있다. 


내가 그 두려운 면담 때문에 고민이 생기면, 또 누군가 나의 상사에게 '면담신청'을 한다. 아마 그 상사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 면담지옥을 즐길 수 있는 때가 되면, 그땐 꽤나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 물론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면담지옥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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