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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동 Oct 30. 2022

집이 물에 잠겼다

내 마음도 빗물에 푹 젖어 무거워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미친듯한 폭우가 계속해서 쏟아지던 8월의 어느 날.

오전부터 내리던 장대 같은 비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몇 시간 전보다 더욱 세차게 온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김애란의 소설 <물속 골리앗>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하루였다.


그즈음 난 포근한 자취방 침대 위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이사 온 나의 새 집은 무척 아늑했다. 나는 신축 빌라의 첫 입주자였으며, 이 건물에는 한 층에 두 가구만 살아 층간소음 문제가 거의 없었다. 밖에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아 엄마가 일전에 일러준 대로 창문을 꼭 닫고, 인버터형 에어컨을 24도로 맞춰놓은 채 서큘레이터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침구가 보송해졌다. 창문을 이중으로 닫으니 우렁차게 투닥거리던 빗소리마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온몸이 축축해진 상태로 귀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살갗에 아무것도 달라붙지 않는 상태가 됐다. 나는 그 완벽한 온도와 습도에 만족하며 스시 집에서 사 온 프리미엄 초밥을 먹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졌다. 배가 부르니 잠이 왔다. 침대 위에서 새우 네타를 잘근잘근 씹다가 나도 모르게 단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깬 건 핸드폰 진동 소리 때문이었다. 본가에 있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집에 물이 차서 바가지로 퍼내고 있어."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우리 가족은 오랜 시간 반지하에 살았지만, 아무리 비가 많이 온 날에도 집이 침수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침수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반지하에 산다는 감각이 덜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반지하치고 높은 지대에 위치해 수재(水災)는 늘 남의 일이라 여겼는데. 굉장한 오산이었다.


부모님은 정신없이 빗물을 퍼내고 있다고 했다. 안방까지 물이 다 들어와 난리가 났다고. 안방 구석에 깔려 있는 매트리스 토퍼, 옷을 넣어둔 종이 박스들, 내 방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백 권의 책, 각종 주방 집기 같은 게 모조리 물에 잠겼다. 제일 처참했던 건 이 얘기를 전화로 전해 듣는 순간, 내가 너무 뽀송한 상태로 침대 위에 누워 이에 낀 새우초밥 찌꺼기를 빼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정신없이 물을 퍼내고 있는데, 나는 '타인의 고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꼴이었다. 그 대비가 너무도 극명해 드라마 각본도 이렇게 쓰면 욕먹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직접 집에 가보지 못하고 전화로만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자꾸만 비극적인 이미지를 상상해냈다. 천만 영화 <기생충>의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물은 얼마나 찬 걸까. 부모님 두 분이 감당하실 수 있는 정도일까? 집을 잠시 버리고 안전한 곳으로 일보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닐까. 오늘 밤에 두 분이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할 수는 있을까. 와중에 본가에 있는 내 물건들 생각이 났다. 대부분의 귀중품은 이사와 동시에 내 개인 자취방으로 가져온 뒤였고, 그 사실을 깨닫자 우습게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내 물건이 모두 빠져버린 상황에서 우리 집에서 제일 값비싼 물건은 뭘까? <기생충> 기우의 수석 같은 물건은 무엇일까. 딱히 이렇다 할 물건이 떠오르지 않는 가운데 친구들과 지인들은 카톡방에서 폭우에 대한 웃긴 짤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만 그들 사이에 속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걸터앉았는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마음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사실 달라진 건 없었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우리 가족은 반지하에 살았고 오늘 이 순간에도 그랬다. 유일한 변수는 나였다. 내가 얼마 전 취업을 했고, 독립을 했고, 가족들보다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간극이 오히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다 함께 그곳에 있을 땐 견딜만했는데 제삼자가 되니 우리 가족의 일상이 비극처럼 여겨졌다. 내 자취방의 안정적인 상태와 비교가 되니 더 처참해 보였다. 그러나 이 일을 너무 비극적으로 볼 필요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우리 나름의 행복을 발견하며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번 폭우는 8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기록적인 재난이었다. 내년에 집이 또 침수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족들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다. 아마 물에 잠겨버린 집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겠지. 쉴 새 없이 내리는 이 비는 언제 그칠 작정일까. 기록적인 폭우로 고통받는 사람이 이 도시에 우리 가족뿐일 리는 없을 텐데 다들 괜찮은 걸까. 오늘 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된 밤이 될 것 같다. 비는 언제나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향하기 마련이므로.


세찬 비가 내리고 내려 우리 마음속에 차오르는 눈물까지 싱겁게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집은 침수될지언정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무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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