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동 Oct 30. 2022

93년도에 만든 청약 통장이 발견되었다

우리 가족 이사 갈 수 있는 걸까요?

부동산에 무관심해 보였던 아빠가 폭탄선언을 했다. 청년 시절 만들어 놓았던 청약 통장이 있었노라고 고백한 것이다. 10년 넘게 반지하를 전전하며 전세살이를 하던 우리 가족에게 청약 통장이 있었다니! 아빠는 왜 그걸 이제야 말한 것이며, 진즉에 사용하지 않았던 걸까? 그러나 지금은 서로를 향한 질타나 책망을 던질 때가 아니었다. 이 통장을 어떻게 하면 영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했다. 우리에겐 주택 청약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그 즉시 청약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두 팔 걷어붙이고 닥치는 대로 정보를 모았다. 청약은 크게 공공 분양과 민간 분양으로 나뉘었다. 쉽게 말하면 LH, SH 같은 공공기관에서 지은 임대주택에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 있었고, 티비 광고에서 보던 브랜드 아파트에 지원하는 전형이 있었다. 소득 기준에 따라, 가지고 있는 통장의 종류에 따라, 혹은 가구원 수에 따라 노려볼 수 있는 주택이 달랐다. 아빠의 경우 무주택기간이 길었고, 청약통장 가입기간도 길었다. 하지만 돈을 꾸준히 납입하지 않은 기간 역시 상당해 아빠의 통장은 현재로서 큰 메리트가 없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꾸준히 5년 정도 미납금을 납부한다면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청약 시장에서 우리 가족의 위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다름 아닌 4 가구였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성인 자녀 . 우리  가족 구성은 국가가 정해놓은 '정상 가족' 기준에  맞았다. 선택할  있는 집의 종류도 많았고, 상황에 따라 가점을 받을 수도 있었다. 반면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 제약이 많았다.



1인 가구는 금회에 지원할 수 있는 주택 아예 없음



공고를 살펴보다 보면 이와 같은 단서 조항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자기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아찔했다.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 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가 되어 홀로서기에 나서는 자립준비 청년(보호 종료 아동)의 경우를 생각해봤다. 이들에겐 기껏 해봐야 전용 면적 40㎡ 이하의 소형 주택만이 허용되었다. 부모님과 여러 가지 이유로 떨어져 살아 동의를 받기 힘든 친구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지원조차 불투명했다. 그 생각을 하면 우리 가족의 처지가 참 다행스럽다가도 동시에 착잡해졌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빠가 청약통장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청약의 세계는 굉장히 복잡했다. 가볍게 생각하고 진입했다가 큰 코를 다칠 수 있었다. 온라인에는 멋도 모르고 청약을 넣었다가 덜컥 당첨된 사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이도 떠다녔다. 정해진 시일 내에 계약금을 납부하지 못해 통장을 날린 사례부터 본인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지원해 파산에 이른 경우까지. '현명한 한 방'을 위해선 철저한 공부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도 어려운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정보는 인터넷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었고, 내가 우리 가족의 상황에 맞게 잘 끼워 맞춰야 했다. 나조차도 이런데, 우리 엄마 아빠 세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장벽처럼 다가오려나. 부동산에 대한 기본적 지식과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엄청난 모순이었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이전 07화 월세 450만 원짜리 아파트의 비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