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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동 Oct 30. 2022

월세 450만 원짜리 아파트의 비밀

5개월간 미국 고오급 아파트에서 살았다

미국에서 인턴십을  적에   렌트비가 $3200, 현재 환율로 450  정도인 아파트에 살았다. 평생 이런 곳에 살아볼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아파트였다.  집은 워싱턴 디씨 근교의 펜타곤 시티(Pentagon City)라는 동네에 있었는데, 아마존 2본사 부지로 낙점될 정도로 핫한 곳이었다.  동네에서 워싱턴 디씨까지는 지하철로 10 정도 걸렸다. 그래서 이곳엔 정부 기관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살았다. 슈퍼마켓 접근성은  어찌나 좋은지, 미국 대형 마트 3대장인 코스트코, 해리스 티터(Harris Teeter), 홀푸드(Whole Foods) 도보 2~10 거리에 있었다. 특히 코스트코는 우리 아파트 코앞에 있어 정말 자주 방문했다. 코스트코에 들어가 '바나나  송이' 달랑 사고 나온 적도 많았다.


우리가 살았던 이 럭셔리한 아파트에는 별의별 게 다 있었다. 최고층에 마사지룸, 네일/페디 룸, 비즈니스룸이 있었고, '클럽 룸'이라 불리던 레지던스 라운지에선 아파트 주민들과 슈퍼볼 경기를 함께 보거나, 소소한 파티를 열었다. 여름이면 꼭대기 층에 있는 루프탑 수영장이 개방됐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선덱(sundeck)에서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 그 옆에는 트레이드 밀과 바이크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작은 헬스장이 있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이 모든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Welcome to The Millennium at Metropolitan Park, where you can find your dream apartment home in the heart of Pentagon City
펜타곤 시티 한복판에 있는, 당신이 꿈에 그리던 아파트
밀레니엄 앳 메트로폴리탄 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출처: 아파트 홈페이지 소개글)



이 아파트엔 공용 공간이 많아 친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언젠가는 아파트 최고층에 있는 클럽 룸에서 생일 파티를 열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50명도 넘는 인원이 공간에 꽉꽉 들어차 있었다. (지인이 지인을 부르고, 그 지인이 또 지인을 초대하며 생긴 일이었다.) 꼭대기 층의 클럽 룸은 그 많은 인원을 전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고개를 돌리면 와인을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친구들 무리가 보였고, 누군가는 TV 맞은편 푹신한 소파에 기대 휴식을 취했다. 누군가는 야외 테라스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이상적인 파티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살았던 집의 도면


방에는 드레스룸(Walk-in Closet)이 있어 굉장히 편했다. 옷가지를 일일이 접을 필요 없이 행거에 걸어 두기만 하면 됐다. 부엌엔 식기세척기가 있었다. 가볍게 초벌 설거지를 한 뒤 접시를 식세기에 넣으면 얼마 뒤 깨끗하게 세척되었다. 아파트 로비에선 매달 '이달의 강아지 선발대회'를 열었다. 아파트에 사는 강아지 중 제일 귀여운 강아지가 선발되어 증명사진이 로비 프런트 데스크에 전시됐다. 출근할 때마다 곁눈질로 이 달의 강아지를 확인하는 것이 소소한 낙이었다. 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의 반려동물까지 사려 깊게 챙겨주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아파트에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관리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경비원 정도의 느낌이 아니었다. 아파트 1층 프런트 데스크에 관리 직원이 24시간 상주했다. 직원은 거주자들의 택배를 맡아 줬고, 문이 실수로 잠겼을 때 스페어 키를 빌려줬고, 공용 시설 관련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치안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든든했다. 미국은 아무리 안전한 동네라 해도 치안이 불안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로비에 가드가 있으니, 낯선 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았다. 관리 직원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엔 일주일에 한 번씩 클리닝 레이디가 방문해 침대 시트를 교체해주고 방을 정리 정돈해줬다. 덕분에 우리 집은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바로 앞에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이제야 추측하는 거지만, 공원 조경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나무들이 항상 푸르를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정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주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의 노동이 나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우리 집에 '살지는' 않았지만,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사람들의 존재가 상당했다. 어쩌면 월세 450만 원 아파트의 비밀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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