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즐기는 상위 1%의 삶

멋대로 상류 패밀리

by 미세스쏭작가

"엄마는 꿈이 뭐야?"

"너희들 잘되는 거."

"우리 꿈 말고. 엄마 꿈 말이야."

"맛집 탐방하며 살기."

맛집 탐방이 꿈이라는 얼마의 대답에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 그런 게 어떻게 꿈이 될 수 있어?" 재차 다른 꿈은 없냐고 캐묻다가 꿈에 대해 토론하기를 관뒀다. 엄마는 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소탈하고 이상한 꿈은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에도 몇 번씩 실현될 수 있다.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동네 식당으로, 때론 차를 타고 외지로 나가서 식사했다. 엄마는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하시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차 안 공기를 데우시며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셨다.


아빠와 반려견으로 인해 소박한 외식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분리불안이 심한 푸들을 집에 홀로 두고 외출하기가 영 께름칙한 데다가, 아빠는 대한민국 일 등 집밥 애호가시다. 엄마는 어떤 식당을 가시더라도 어지간하면 만족하시는 반면, 아빠는 그 어느 식당을 가시든지 열에 아홉 가격과 맛 부분에서 불만족을 표출하신다.

"너희 엄마가 만든 음식이 훨씬 낫다.", "집에서 먹으면 싼데 이 돈을 주고 사 먹어야겠냐." 아빠의 계산에 엄마의 수고는 얼마로 환산되었냐고 따지면 "물론 너희 엄마가 고생은 하지만 집에서 먹는 게 낫지."라고 답할 뿐이셨다.

주부가 되면 남이 차려주는 밥은 뭐든지 맛있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요리하면서 냄새에 취하고, 땀 흘리고, 지지고 볶고, 상을 차리고, 정리하고 나면 내가 밥을 먹었는지 밥이 스스로 뱃속으로 기어 들어갔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된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물론 카페, 샤부샤부, 두부 정식만 사 먹어도 엄마는 너무나 행복한 어린아이가 된다.

이것 참 맛있다, 이런 곳이 다 있었네, 덕분에 호강한다 예쁜 칭찬을 늘어놓으시는 엄마. 그러면서도 음식이 부족해 보이거나 조카들이 조금만 칭얼거리면 "아휴. 배불러. 난 다 먹었다." 하시며 일찍이 숟가락을 내려놓으신다. 그러지 마시라고 아무리 부탁을 해도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습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로 인해 일부러 맛있는 음식을 남기거나 나 또한 배부른 척할 때가 많다. 엄마가 만족하셔야만 비로소 모두가 만족스럽다는 사실을 이제는 좀 아셔야 할 텐데. 이런 엄마의 성향을 일찍이 파악하고 여러 모로 배려해 준 남편 덕분에 결혼 후에 엄마와 함께 다양한 외식을 즐겼다. 우리의 단골 메뉴는 코다리찜, 김치찜, 국밥... (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코다리찜, 김치찜, 국밥... 코다ㄹ... )


식후에 아메리카노 한 잔, 시답잖은 빙수 한 그릇에도 눈주름이 부챗살이 되도록 활짝 웃으시면서 "오늘은 상위 일 프로의 삶이네." 극찬을 하시는 우리 한여사님. 상위 1%의 삶을 본 적도 없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는데 왜 자꾸 상위 일 프로의 삶을 운운하시는지. 누가 들을까 조금 민망할 때도 있지만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우리가 한 수 위일 지도?

맛집 탐방이 여생의 꿈이라는 엄마의 말에 실소와 폭소 중간의 반응을 보였던 나는 엄마의 상위 1% 발언에도 "푸학" 하며 파열음 가득한 웃음을 내뿜었다. 상류 인생이 뭔지 알 길이 없지만 그림자 흉내라도 내 보고자 부모님을 모시고 두어 번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엄마는 가격을 보시곤 "미쳤어. 이건 너무 심하다."라고 인상을 찌푸리시더니 아주 맛있게 잘 드셨다. 아빠도 급이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좋다, 맛있다, 괜찮다는 호평만 하셨다.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즐겁게 식사하는 가족들을 보니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맛집 탐방이 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하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쪼개 모이고 떡을 떼고 즐기는 일이 꿈이 될 수 없다면 무엇이 꿈이 될 수 있겠는가.


여행 떠나면 일류, 외식하면 일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만 마셔도 일류가 되는 엄마의 꿈을 이젠 나도 함께 꾼다. 우린 올여름 시원한 영화관에서 팝콘 하나를 두고 일류 피서객이 되었고, 처음 가보는 도시의 맛집에서도 상위 일 프로의 삶이 되었다.

부모님이 이사 가시기 전 날 엄마와 둘이 데이트를 즐겼다.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일식집에 방문한 모녀. 날것을 즐기지 않는 우리는 여섯 가지 맛의 크로켓과 알밥과 냉메밀과 초밥을 주문했다. 회도 안 먹으면서 여길 왜 왔대? 하시던 엄마는 우리 둘만을 위해 가득 차려진 상을 보며 빙그레 웃으셨다. 그날따라 음식이 늦게 나온다는 이유로 과일과 냉메밀을 하나 더 서비스로 가져다 주신 사장님 덕분에 우린 배가 터지도록 동네 만찬을 만끽했다.


가족들과 외식이 잦아진 요즘 엄마는 상위 1% 언급을 뚝 멈추셨다. 뭔가 색다른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 이거 참, 비행기 티켓 한 번 끊어 봐?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여전히 신나고 유일한 삶의 낙이라는 부모님. 두 분의 얼굴을 조명처럼 밝혀 줄 맛있는 음식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좋겠다. 상위 몇 프로의 지위와 재력 그런 건 당최 모르겠지만 우린 다른 의미로 충분히 멋지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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