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답도 없는 투쟁에서 조금이라도 덜 상처 입고 힘을 아껴 보자는 취지의 글이다. 층간소음 일타강사가 추천하는 준비 운동 삼 단계를 살펴보자. (준비 운동이 아니라 존버 운동이라고 칭해야 할지도...?)
준비 운동 하나, 정확한 원인 파악하기.
위, 아래, 그리고 우리 집까지 세 집이 관리실에 모여서 열띤 삼자대면을 했을 때 새벽 내내 소음이 들린다고 애먼 사람을 잡았던 아랫집. 희한하게 모두 어느 정도는 새벽 소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저녁이 되면 귀마개를 끼고 소음을 원천 차단해 버리는 편이다. 그런데 어쩌다 귀마개를 끼지 않은 날이면 새벽마다 누군가 왔다 갔다 부산 떠는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갖다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면서 바삐 움직이는 낌새였다. 가까이 사는 이웃 누군가가 저녁만 되면 야행성 활동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물론 야심한 시각에 문을 수차례 꽝꽝 닫고 고성방가를 하지 않는 한 제집을 드나드는 건 몇 번이고 이웃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루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잠옷 차림으로 대문을 열었다. '도대체 누굴까?' 엘리베이터는 고층에 있었다. 거기서부터 차례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고요한 밤, 연식 있는 엘리베이터의 모터 소리는 통통배와 신호총처럼 땅땅 울렸다. 아침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드르륵, 탁, 샤샤삭. 범인은 층마다 새벽 배송을 돕고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오랜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파이팅을 외치는 마음으로 슬그머니 문을 닫았던 기억이 난다.
섣부른 추측만으로 이웃을 의심하기 전에 몸을 움직여 적극적으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불이 켜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문 앞에 갔더니 그저 말소리가 들린단 이유만으로 억울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선 안 될 일. 앞집, 윗집, 아랫집, 이집 저집을 다니며 재차 확인했는데도 소음 주체를 특정하지 못했다면? 그땐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아야 한다.
준비 운동 둘, 중간 관리인의 도움을 구하자.
윗집 소음이 심한 날 관리실 직원분과 동행하여 윗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관리실 직원 아저씨께서 직접 벨을 누르신 후에 "관리실에서 왔습니다. 문 좀 열어 주시겠어요?" 하고 대화의 장을 열어 주셨다. 문을 열자마자 목소리를 높이는 아줌마와 잠시 다퉜는데 이 또한 깔끔하게 중재해 주셨다. "소음에 조금만 신경 써 주세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저씨의 말씀을 끝으로 언쟁이 마무리됐다.
섣불리 남의 집에 찾아갔다가 주거침입이 적용될 수 있고, 감정이 앞서 큰 싸움이 날 수도 있다. 중간 관리자분들께 동행해 주실 수 있는지 먼저 양해를 구하고 정중히 부탁하자. 관리실에서 배포한 내규집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층간소음 관련하여 최초의 도움을 청했을 때 관리실 측은 무지했다.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 서로 헤매기 바빴다. 관리소장이 "우리가 이런 일 하는 사람인 줄 아세요?" 하고 따져서 공기관에 공문 요청까지 했던 지난한 경험이 있다. 이처럼 관리자의 재량과 적극성은 인적 요소, 경력, 관리실 분위기에 의해서도 좌지우지된다. 관리인이 공정성을 잃고 한쪽 이야기만을 듣거나 이쪽에서는 이쪽 말에 맞장구치고, 저쪽에서는 저쪽 말에 맞장구치면서 편들기를 하면 양쪽의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될 뿐이다.
준비 운동 셋, 대화는 간결할수록 좋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메모를 남기거나 관리실에 유선 연락을 요청하자.
핵심을 짚지 못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새벽에 샤워하는 소리 때문에 힘들어요."
"우리 집에서 씻지도 못해요? 샤워도 못 하냐고요!"
이런 식의 싸움은 아니 한 만 못하다. 새벽 욕실 소음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항의했던 분은 실은 샤워하는 소리가 아니라, 샤워 후에 요란하게 욕실 청소를 하는 소음 때문에 힘드셨단다. 당신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촌철살인을 준비해 두자.
층간 소음을 내는 사람의 입장에선 참고 사는 이웃이 최고로 좋은 사람이다.
층간 소음을 참는 사람의 입장에선 배려하는 이웃이 최고로 좋은 사람이다.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반려 이웃이 될 수 없다.
필자의 경우 너무나 강력한 층간소음과 괴상한 이웃들을 경험해 왔다. 귀마개나 이어폰 사용 시 소음이 어느 정도 차단되면 다행이라 여기는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이렇게 딱한 사람도 있으니 여러분은 부디 나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으시기를 바란다.
우리 집이 어떤 소음에 취약한지, 나는 어떤 소음이 가장 견디기 힘든지부터 파악하고 가족들에게 충분히 고충을 전하자. 살다 보니 이웃의 생활 습관에 따라 층간소음이 가장 심각한 시각이나 행동 패턴 등도 파악 가능해졌다. 필요할 땐 언제든 도구의 도움을 빌려 안정을 취하는 편이다.
층간소음은 내는 사람들이 계속 낸다. 이웃은 바뀔지언정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하다. 층간소음 일타강사 에세이는 윗집 아주머니의 발소리 행진곡에 영감을 얻어 쓰였다. 쿵쿵쿵. 쾅쾅쾅. 발망치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면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동지들을 생각했다. 이웃의 연주가 지나치게 격정적인 날에는 서둘러 귓구멍에 귀마개를 꽂는다. 조카가 좋아하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내 몸은 내가 지켜!" 오랜 투쟁에서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이는 결국 나 자신뿐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만일 인생에 고통의 총량 법칙 같은 게 있다면 훗날 우리가 살 집은 충분히 우리의 몸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곳일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