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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an 15. 2024

1만 4600번의 산책 중에 겪은 일

산책 중에 겪은 레전드 사건 Best3

 하루  번 이상 산책을 하는 나는 인간 세상을 노닐며 다양한 체험을 했다. 지금까지 적어도 만사천육백 번의 산책을 했던 내가 레전드로 꼽는 짜릿한 사건이 세 개 있다.


 언니가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 준 다음날이었다. 아빠와 초겨울 공원을 산책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큰 호수를 따라 풀냄새를 맡으며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도시에서 살지만 매일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빠께서 "오리 떼네. 자두야. 오리!" 하며 으쌰으쌰 추임새를 넣으셨다. 오리 사냥인 나는 순간 눈알이 뒤집혀 목줄을 맨 채 호수로 뛰어들었다. 꽥꽥이 녀석들의 깜짝 놀란 날갯짓을 보고 싶었다.

 다닥. 풍덩.

 차가운 물이 내 콧구멍과 눈정신없이 덮쳤다. 오리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꼴깍. 꿀꺽.

 내가 마시는 것이 호수물인지 내 목숨인지 알 턱이 없었다. 놀란 아빠는 호수로 뛰어들어 내게로 헤엄쳐 오셨다. 둘 다 수영을 못 했더라면 나는 즉사했을 것이다. 무사히 호수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이번엔 많은 구경꾼들의 틈을 헤엄쳐 나가야 했다. 그 후로 물과 오리를 혐오하게 됐음을 고백한다.


 이십 대 후반이었던 언니나와의 산책 중에 어린 청소년에게 번호를 따일 뻔한 적이 있다. 운동기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내 이름과 나이와 사는 곳을 물었다. 왜 내게 그렇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지 황당했지만 언니는 적당히 답변을 해주었다. 언니 옆에 떡하니 서서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자전거 묘기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니. 왜? 전혀 관심 없는데.'

 당황한 나와 언니는 갑자기 시작된 학예회 무대를 지켜보다가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 도망을 가야 할까 고심했다. 열심히 자전거 앞바퀴를 들었다 놓았다 재주를 부리던 남학생이 이번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언니에게 물었다. "저 어땠어요?" 당황한 언니는 대충 "응? 잘한다." 하고 답하며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학생은 매일 이곳에 오냐며 언니에게 연락처를 알려 달라 청했다. 언니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꼭꼭 숨긴 채 곗거리를 둘러대며 자리를 피했다. 한참 윗사람에게 그렇게 서슴없이 다가와 묘기를 보여주고 번호까지 묻다니. 뭐가 돼도 될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사건은 만일 누군가 카메라로 찍었다면 유튜브 화제 영상이 되지 않았을까 예상하는데. 여름철이 되면 더 자주 밖에 나가 원하는 나를 데리고 원으로  언니. 항문낭 수술을 받은 탓에 간단한 산책만 겨우 했던 나는 이제 거의 회복이 된 상태였다. 단단히 목줄을 착용하고 정신없이 친구들 냄새를 따라 걸었다.

 바로 그때 개 두 마리가 큰 소리로 짖으며 나와 언니를 향해 돌진해 왔다. 나는 언니를 지키고자 온 힘을 다해 짖으며 가까이 오지 마라고 경고했다. 녀석들은 급기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나의 앞뒤를 공격하려 들었다. 오금이 굳을 정도로 놀란 언니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목줄을 높이 치켜들었다.

 "컥!" 줄 하나에 의지해 급히 공중으로 몸이 들린 탓에 숨통이 조였고 목줄 벗겨질 뻔했다. 개 두 마리는 언니의 다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나를 내려놓으라고 악을 써댔다. "도와주세요." 언니가 절규하듯 외치자 아줌마들이 다가와 녀석들의 이름을 불렀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두 녀석이 주인에게 포박됐다.


  언니는 덜덜 떨며 내 몸에 상처 난 곳이 없는지 확인한 후 잠긴 목을 가다듬고 겨우 입을 뗐다. "목줄을 착용해 주세요." 그런데 내 두 귀를 의심할 만한 답변이 날 선 화살처럼 날아왔다.

 "X랄 하고 있네. 네가 여기에 오지를 말던가." 멍...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열대 명이 되는 아주머니들이 우리 쪽으로 모기 시작했다. 언니는 나를 두 손에 꼭 안은 채 물러서지 않고 반격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애견인들이 손가락질을 당하는 거라고. 공원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시라고. 당신 개가 목줄도 하지 않은 채 달려들어서 남의 개를 공격했으면 사과를 하는 게 정상이라고.

 무논리에 논리로 맞서싸우기란 물에 불린 사료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언니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일인 시위를 했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터라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혼자서 꼿꼿이 그 모든 상황을 타했다. 십 대 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 쪽은 놀랍게도 우리였다. 얼마 후 공원의 빛바랜 플래카드가 튼튼한 새것으로 교체다. 래카드에 쓰인 내용은 이러했다. "반려견과 산책 시 목줄 착용 필수"


 산책을 하다 보면 좋은 일이 대다수지만 이따금 억울한 일을 겪는다. 몸집이 왜소한 나와 언니는 행인에게 뜬금없는 훈수를 당하기도 하고 전형적 약강강약유형의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당하기도 한다. 다른 친구의 똥을 내 것으로 오해해 갑자기 혼을 내는 사람도 있고, 목줄이 풀린 채 달려들어 놓고 사과를 하지 않는 들도 있다. 보기와 달리 우리는 부정의 앞에선 물러나는 법을 모르는 랑이 새끼들이다. 어흥. 그러니 작다고 무시 마시라 이 말씀.

 웃긴 건 아빠와 오빠들과 산책 단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는 사실. 내가 크고 무섭게 생긴 맹견이거나 언니가 운동을 많이 해서 마동석 아저씨처럼 몸을 키우면 좋겠다. 귀여움이 내 무기지만 모두에게 통하는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친구들아. 우리 건강 위해서 산책 자주 하고 살자. 산책할 땐 목줄 꼭 착용하. 약속!

미세먼지 없는 날은 코가 뻥 뚫려요. 기분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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