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남친이자 현 남편이 사준 가방

이런 가방 또 없습니다

by 미세스쏭작가

볼 때마다 영감이 샘솟는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가방이 하나 있다. 남편이 아직 남자친구이던 시절에 여행지에서 사다 준 가방인데 나 혼자만 보기엔 아까운 진귀한 아이템이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인 대만의 지우펀을 홀로 여행했던 유니(가명). 나와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을 사다 주고 싶다며 묻는 그에게 “가오나시 캐릭터의 기념품 그리고 엄마랑 함께 들 수 있는 에코백.”이라고 답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가오나시 캐릭터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념품을 기다렸다. 선물은 주는 사람 또한 설레는 법. 보고팠던 그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대만에서 사 온 물건들을 건넸다.


우. 아. 오.

그가 비행기를 타고 공수해 온 가방을 보는 순간 어버버 리액션이 꼬여버린 나. “이야. 가오나시 얼굴이 엄청나게 크게 박혀 있네. 엄마랑 같이 들고 다니려고 했는데 이건 아무래도 나 혼자 사용해야겠다. 허허.” 순수한 그는 일부러 검은색으로 사 왔으니 어머니와 함께 들고 다니라고 했다. 또르륵.


다음 날 용기를 내서 그 가방을 메고 사무실에 출근을 해보았다. 내 패션 아이템을 발견한 사무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감탄을 했다. “야. 네 남자친구 똑똑하다. 다시는 가방 같은 거 안 사주겠다고 못을 박았네.” 내 남자친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동료 한 명이 “어머니랑 같이 들 에코백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한방 맥인 거 아니냐?”라고 물었고 우리 모두 배꼽을 잡고 폭소했다.


그가 지우펀에 있을 때 바닥에 펼쳐진 가오나시 얼굴 사진을 보냈었는데 솔직히 나는 그게 내 가방인 줄도 몰랐다. 지우펀의 설치 미술인 줄 알고 “우와. 지브리 동네답다.”라는 감상평을 보냈었다. 이 가방을 멜 때마다 사람들이 어찌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던지. 이 봐. 가오나시. 이 구역의 주인공은 나야. 잠시 수납함 안으로 들어가 있어.


그렇게 한동안 가오나시 백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얼마 전 산책을 하던 남편이 섭섭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왜 내가 사준 가방 안 들고 다녀?” 무슨 가방을 말하는 거냐고 묻자 더욱 섭섭해하며 “대만에서 사다 준 가방 말이야!”라고 채근하는 그. “아. 그거...?” (어떻게 그래요. 내가 그걸 어떻게 메고 다녀요.) 여름이 되거든 용기를 내서 들고 다녀보겠다고 러댔다.

얼마 전에 당직을 서야 하는 남편을 위해 칫솔, 충전기 등을 대왕 가오나시 가방에 넣어서 줬다. 그런데 남들 시선을 좀처럼 신경 쓰지 않는 그조차 “다른 가방은 없어?” 하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 가방이 어때서 그러느냐고 모르는 척 따졌는데 결국 그는 다른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뭐여. 진짜로 맥인 거였어?


어쨌거나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면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의 순수한 추억이 깃든 아이템인 것은 맞다. 문제의 백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다만, 혹시라도 이렇게 존재감이 만개한 가방을 들고 시내를 활보하는 아줌마가 있거든 부디 너그러운 미소로 봐주시길. 아니. 제발 못 본 척해주시길.

엄마는 이 가방을 보시고 "악! 이게 뭐야. 너무 무섭다 "라고 하셨다...
조명이 켜지는 귀여운 가오나시 장식품. 이건 좀 센스 터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