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면세점에서 커다란 비닐 가방을 여러 개 들고 오는 남동생에게 물었다. "뭘 그렇게 샀어?" 동생은 별말 없이 화장품과 브러시와 방수 마스크 등을 건넸다. 막둥이가 여행 경비에 많은 돈을 보탰기에 마냥 기쁘게 받을 수 없었다."이건 얼마야? 저건 얼만데?"자꾸가격을 따졌더니 말을 함구하는 남동생이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제품들이 많았는데 흔하디 흔한 빗은 대체 왜 샀는지 의아했다. 게다가 브러시 가격을 알게 된 나는 당장 환불이라도 하고 싶었다. 오백 원짜리 빗을 15년째 쓰고 있는 나로서는 절대 사지 않을 값비싼 제품이었다. "무슨 빗이 사만 원씩이나 해? 비싼 것도 샀네." 보다 못한남편이 슬그머니 내게일렀다. "생각해서 사 준 건데 잘 쓰면 되지." 아차! 그제야 남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고맙다 말했다. 본인 것은 챙기지도 않고 가족들 선물만 잔뜩 산 남동생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이가 촘촘히 박힌 커다란 브러시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워낙에 머리카락이 가늘고 잘 엉키는 사람인지라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이었다. 입국할 때까지 포장지를 뜯지도 않고 미리 챙겨 갔던 빗만을 사용했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짐을 정리한 후에야 남동생이 준 선물들을 유심히 살폈다. 문제의 브러시는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무 손잡이와 적당히 어두운색깔이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었다. 빗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와 끈을 모두 제거한 후 머리카락을 아주 조심스럽게 빗었다.어라? 뻑뻑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미끄러지듯 빗질이 잘 됐다. '인기가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머쓱했다.
가족들 모두 나처럼 관리하기 어려운 머리카락을 가졌기에 같은 브러시를 인 당 하나씩 소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은 비싼 빗을 두 개만 사서 첫째 누나, 둘째 누나에게 양보했다.묵직한 우든 브러시는 건조한 계절에도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는 점이 놀라웠다.아베다 브러시의 가장 큰 장점은 엉킴 없는 빗질과 시원한 두피 마사지 기능이었다. 두피를 통통 두들기며 커다란 브러시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쓸어주면 혈액순환이 됨과 동시에스트레스가 풀린다.
열펌을 한 직후나 젖은 머리카락에는 도끼빗을 사용하고 일반 헤어에는 아베다 브러시를 사용하는 편이다. 내게 잘 맞는 빗이 두 개나 있어 유용하다. 우든 브러시를 사용할 때마다 막둥이에게 두고두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돈 아껴 쓰라며 꼰대 소리를 지껄인 것도 후회된다. 흑.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좋은 건 뭐든지 풍족하게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못할 때가 많았다. 여행 당시 남동생은 태어나 처음으로 머리를 길렀었다.질 좋은 브러시는 본인에게도필요한 제품이었지만 세 개나 구매하기는 부담스러워 누나들에게 양보했을 터.막둥이가 누린 것은 대리만족이 전부였다. 그 심정을 잘 알기에 이 빗은 의미가 남다르다.
빗을 잘 사용하지 않던 남편도 여행 후론 빗질을 즐기기 시작했다. 화장대에 두었던 우든 브러시는 이제 거실의 수납장 위로 이사를 했다. 매일 아침 우리 부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브러시에는 막둥이의 배려와 응원이 가득 깃들어 있다. 여행지에서 남긴 최고의 애정템이 브러시가 될 줄이야?
오백 원짜리 빗과 사만 원짜리 빗을 나란히 두고 반추한다. 나는 비싼 게 최고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베다 브러시만큼은 영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시중에는 아베다 우든 패들 브러시와 똑 닮은 빗들이아주 많다. 보기엔 쌍둥이 같지만 막상 사용하면 머리카락이 엉키고 정전기가 발생하는 빗이 대다수다. 모양은 흉내 내도 스테디셀러의 오랜 노하우까지 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도대체 이 한 끗 차의 비결이뭘까?
숱하게 도전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면 언젠가는 길이 보일까. 내가 쓰는 글에 나만의한 끗 차이를 녹이는 방법을 고심한다. 아베다 우든 브러시가 내게 준 메시지는 이러하다. 포기하지 말고 한 분야를 깊이 정성스럽게 팔 것.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빗어 주며시원하게 마사지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나저나 빗을 보면서도 결국엔 글만 생각하는 나도 참 못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