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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r 05. 2024

마법사의 손 오백 원짜리 도끼빗

정가: 500원, 감정가: 5만 원

 딱 오백 원짜리 기대를 품고 샀던 빗이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던 날 시간이 남아 역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잡화점에 들렀다. 임시방편으로 쓸 빗을 사려고. 집에도 빗이 여러 개 있었기에 가장 저렴한 제품을 골랐다. 성긴 구조와 색이 마음에 들어서 잘 선택했단 생각이 들었다. 계산 후 머리카락을 살살 빗었는데 어느 빗보다도 쓱쓱 빗질이 잘 됐다. 가늘고 없는 머리카락을 당김 없이 부드럽게 정돈하는 빗의 성능에 감탄했다. 몇 번 쓰다 말 것이라 예상했던 빗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최고의 미용 파트너인 셈이다.


 인형 머리카락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나는 헤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바람만 불어도 엉키는 머리칼을 촘촘한 빗으로 대번에 빗는 행동은 절대 삼가야 한다. 빗질을 한 번만 잘못해도 심하게 상해서 모두 잘라내야 하는 상태가 된다. 엉키지 않는 특수한 빗이니 뭐니 하는 여러 종류의 빗에 적잖은 돈을 투자했지만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게 오백 원짜리 도끼빗은 마법사의 손처럼 요긴한 아이템이었다. 젖은 머리카락도 엉킴 없이 대번에 빗기는 것은 물론 펌을 한 직후에도 마법의 도끼빗 하나면 차분한 머릿결이 완성된다. 내 머리카락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빗이다.


 쓰면 쓸수록 마음에 드는 제품인데 가격은 단 돈 오백 원. 엄마께서도 내 빗을 사용하시더니 마음에 쏙 든다며 하나 사다 달라 청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분실이 염려 됐던 찰나라 같은 가게를 찾았다. 양말과 빗 같은 작은 생필품에는 보이지 않는 발이 달려 있지 않은가.

 빗을 사기 위해 작은 동전지갑에 현금까지 챙겨 갔다.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색깔 별로 판매되던 빗이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점원 분께도 여쭸지만 매대에 나와 있는 제품이 다라고 하셨다. 그 후 역을 지날 때마다 여러 잡화점에 들렀지만 같은 제품을 찾을 수 없었다.

 핸드폰도 잘 잃어버리는 내가 작은 하나를 십오 이상 사용했다. 절판된 제품이기에 사용 후엔 즉각 제자리에 갖다 놓는 원칙을 지킨다. 단 며칠 새에 가게에서 잠적한 것도 그렇고 전국 곳곳을 넘어 타국도 여러 번 드나들었는데 여전히 내 곁에 있는 빗이 신기하다.


 얼마 전 늘 쓰던 빗이 보이지 않아 서둘러 행방을 찾았다. 화장대와 욕실, 외출할 때 들었던 가방 곳곳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남편과 가족들에게 "연보라 색 도끼 빗 보신 분?" 하고 물었으나 모르겠단 답만 돌아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릴 순 없어.' 있을 법한 모든 공간을 확인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았다. 매일 쓰던 빗이 없으니 어찌나 불편하던지. 그래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든 가지고 다니는 빗인지라 잃어버렸다가 찾았던 적이 많았다. 며칠이 지나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가방 속에서 빗을 발견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백 이상의 쓰임을 이미 빗. 앞으로도 밤낮으로 머리카락을 책임 요물템 도끼 빗. 몹시 소박한 물건을 애타게 찾는 나를 보면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다른 쓰면 되잖아. 새로 하나 사." 왕년의 구매왕에게 함부로 새 제품을 논하지 말 것.

 남들 눈엔 한낱 볼품없는 그냥 빗일 뿐이겠지만 내겐 너무나 필요하고 요긴한 생활필수품이다. 잃어버려선 안 되고 되찾을 때까지 포기할 수도 없다.

 나의 손때와 추억이 가득한 도끼빗과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긴긴 시간과 쓰임의 기록을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상표명도 제조사도 그 흔한 "Made in" 표기조차도 없는 오백 원짜리 빗과 함께 청춘을 보냈다. 온갖 멋을 부리던 시절에 내 신체의 꼭대기를 책임져 준 고맙고 정겨운 빗이다.


 지인이나 가족이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나는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어디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했어? 기억나는 거 있어?" 호들갑을 떨면서 내 물건을 찾듯, 보물 찾기를 하듯 함께 열심히 찾는다. 물건을 특별히 아낀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연보라색 도끼빗의 주인은 잘 안다. 질풍노도의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헤어 스타일을 책임지며 어디든 나를 따라다녔던 요술 빗. 때론 긴장하고 얽힌 마음마저 살살 풀어주는 물건을 만난 것은 분명 다사로운 마법이다.


소유주 의견:

어차피 살 사람 없으므로 감정가 5만 원 낙찰.

메이드 인 호그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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