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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r 20. 2024

드라이기를 사고 시간을 얻었다

정가: 60만 원, 감정가: 40만 원

 주부 입문 시의 나는 절정의 왁벽주의자였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모든 일을 똑소리 나게 잘 해내려 애썼다. 열심히 일하고 귀가하면 집안 구석구석을 가꿨고 머리카락 한 올조차 굴러다니지 않게 청소했다. 출근 전에 머리 말리는 시간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거금의 드라이기 구매를 고심했던 때는 바야흐로 2019년도였다. 당시 D사의 드라이기의 가격은 40만 원 정도였는데 내가 소지했던 드라이기를 열 개 이상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비싸도 너무 비싸. 그래도 질러 봐?"

 "드라이기를 이 돈 주고 살 일이야?"


 한 달 정도 살까 말까를 고민던 우리 부부는 결국 다이슨 드라이기를 주문했다. 아담한 크기에 진분홍의 동그란 띠가 귀여운 제품이었는데 모양새와 달리 풍력은 어마어마했다. 머리숱이 많은 남편과 머리카락이 긴 나는 매일 아침 드라이기의 힘을 빌려 외출 준비 시간을 단축했다. "이거 사길 참 잘했다."라는 소리를 입이 닳도록 한 가전 기구 중 하나가 D사의 드라이기이다.


 팔 힘이 약한 나는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이 고됐던 나머지 머리카락을 단발로 댕강 자르기도 했다. 두피부터 어깨 선 밑까지 젖은 머리칼을 말리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절반은 닳았다. 물론 팔 힘을 기르지 못한 나의 업보이기도 했다.

 항공 모터를 사용한 드라이기, 머릿결이 손상되지 않는 드라이기 등등 별의별 드라이기를 다 사용했으나 만족도 낮았다. '드라이기가 뭐 전부 거기서 거기지.'라는 생각 굳어질 뿐이었다. 어떤 제품을 써도 머리칼은 더디게 말랐고 머릿결 또한 적잖이 상했다. D사의 드라이기를 쓰고 나의 생각과 생활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다이슨 드라이기를 사용하고 처음으로 최장기간 긴 머리를 유지했다. 강력한 풍력 덕분에 이제는 머리를 말리는 일이 심히 귀찮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오 년 동안 같은 드라이기를 사용하며 매일 아침 10분가량의 시간을 절약다. 찰나의 순간이 쌓여 만 분 이상의 굉장한 시간이 내 것이 되었다. 화살처럼 날아다니는 아침 시간을 하나의 가전제품으로 쭉 절용해 왔으니 더 미루지 않고 사길 잘했다 싶다.


 게다가 드라이기의 최대 수혜자는 반려견 푸들 님이시다. 목욕 후에 털을 말리다가 잡기놀이를 하기 일쑤였던 개와 집사는 D사의 드라이기로 타협점을 찾았다. 아주 예민하고 참을성 없는 반려견 자두의 목욕을 마무리하는 데엔 다이슨 드라이기만 한 조력자가 없다.

 남편과 나와 강아지 세 식구가 오랜 시간 만족하며 쓴 드라이기. 가끔 '고장 나면 어떡하지.'라는 암울한 상상을 하는데 대체품 없다. 새 드라이기를 장만해야 한다면 또다시 같은 제품을 살 것이다.

 가끔 성능 좋은 우리 집 드라이기가 아닌 다른 드라이기를 사용할 때면 답답함이 차오른다. 큰 집 살다가 좁은 집으로 이사하면 힘들다는 게 이런 이치인가. 태풍으로 머리를 말리다가 호호 입김으로 머리를 맡기는 느낌이.


 문득 궁금했다. '요즘 D사의 드라이기 가격은 얼마지?' 60만 원을 웃도는 정가를 보니 모르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 그새 20만 원이 더 올랐다. 과거의 나는 드라이기를 몇십만 원씩이나 주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호가 40만 원을 주장하고 있다. 드라이기 하나로 여태 일만팔천이백오십 분을 아꼈다. 아쉬운 사람이 지갑을 열야지 별 수가 있나. 드라이기를 샀는데 그보다 훨씬 값비싼 시간이 덤으로 따라왔다. 돈 주고 시간을 살 수 없다는 말에 아주 살짝 반기를 드는 생활 용품을 소개해 보았다.


소유주 의견:

아무리 백 번 양보해도 60만 원은 너무하지 않니. 이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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