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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y 04. 2023

가난하게 컸어?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배우 공민정과 주현영 씨가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을 재미있게 각색했다. 다음은 공민정 씨가 후배 기자를 괴롭히는 대화 내용이다.


공: 가난하게 컸어?

주:... 음?...

공: 가난하게 컸냐고.

주: (천진하게)네...

공: 왜 가난하게 컸어?

주: (울먹이며) 저도 몰라요. 근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공: 흐엉. 이러면 못되게 할 수가 없어.


본래의 드라마에서 후배 기자는 가난하게 자랐냐는 선배의 막돼먹은 질문에 큰 충격과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 주현영은 빠른 인정과 함께 본인이 왜 가난하게 컸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그걸 왜 물어보냐고 되묻는다. 역시 호락호락하게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던 MC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공민정과 함께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누군가 내게 저렇게 날이 선 질문을 한다면 나 또한 주현영 씨와 비슷하게 답을 할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선 욕이 먼저 튀어나갈 수도 있겠지) 가난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므로 상대성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내가 가난하게 자랐는지 풍족하게 자랐는지 한쪽만을 짚어 답해야 한다면 풍족하게 자랐으나 현실은 가난했다. 우리 집은 풍족과는 거리가 먼 편에 속했지만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 눈에는 내가 좀 다르게 보였나 보다. 뜬금없이 “OO 씨는 집이 좀 살지?”, “풍족하게 자란 게 태가 나서 부러워.”라는 말을 때가 많았다. 내가 아니라고 대답을 해도 상대가 “에이. 거짓말.” 이런 반응을 보이면 의아했다. 비싼 물건을 들고 다닌 적도 없고 심지어 점심 한 끼를 사 먹을 때도 가성비가 우선이었던 나를 보고 왜 그런 착각을 했을까? 사랑만큼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덕분일지도.

    

부모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게 있을 때 한 번도 “사정이 안 돼서 어렵다.”라는 답변을 하셨던 적이 없다. 아빠는 내가 “아빠. 나 필요한 거 있어.”라고 말하면 가격도 묻지 않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조건 “사고 싶으면 사. 아빠가 사줄게.”라고 하셨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은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는 물건인 핸드폰, 워크맨, 전자사전 같은 귀한 전자제품들을 누구보다도 일찍 갖게 해 주셨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도 않은 부모님이 우리에게 비싼 물건을 사주실 때면 금전만큼이나 용기도 필요했을 터다. 부모님의 사랑과 물질적 가난은 우리 삼 남매를 끈끈하고 강하게 키워냈다.

      

우리에게 가난이란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였다. 겉으로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가난. 긴장을 늦추면 언제든 우리를 덮칠 위협을 하는 가난. 하지만 웃겨야 사는 우리 가족은 항상 “우리가 돈이 없지 재미가 없냐.”라는 식으로 가난마저 개그 소재로 삼고 유쾌하게 지냈다. 예를 들면 집에서 씻을 때마다 녹물이 나오는 탓에 물을 한참 흘려보낸 후에 사용해야 됐던 적이 있다. 어느 날 나는 녹물 사용 시 신체에 해로운 물질이 쌓이고 이로 인해 분노 조절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내가 성질이 더러운 게 다 이유가 있었군.’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기사 내용을 알리며 녹물이 나에게 몹시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자 가족들이 콧방귀를 뀌며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럼 녹물 나오기 전은 어떻게 설명할?”, “본인을 돌아보지 못하고 녹물 탓을 대고 있네. 참나.” 어찌나 민망하고 지당한 공격인지 물러설 곳이 없던 나는 “와하하” 웃어버렸다. 신이 난 가족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나를 놀렸다. 우연인지 핑계인지는 모르겠으나 녹물이 나오는 집을 탈출한 후로는 분노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후문.

    

징그럽게 우릴 따라다니던 가난은 조금씩 작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동생들은 장성하게 성장하여 멋진 사회인이 되었다. 돈 버는 순으로 차례를 매기면 내가 막내다. 하지만 내 나중은 심히 창대할 테니 걱정이 없다. 가난이라는 문제에 가장 예리하게 반응했던 둘째 동생이 얼마 전에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언니는 가난에 대해 글을 한 번 써 봐.” 둘째가 내게 그런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오고 소재도 나는구나.

가난으로의 입성은 하루 충분하, 가난을 탈출하는 데는 수백 배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 가족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곤경의 과정을 잘 통과했지만 두 번 다시 친해지고 싶지 않은 가난. 빈곤을 딛고 지금을 잘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이 감사하고 기특하다. 가난이여 으론 내 근처에도 오지 말고 영영 물러가거라. 훠이훠이.


-사진 출처: 안녕 자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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