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잘 사는 인생
십인분 인생 나가신다 11
통상 ‘잘 사는 사람’이라 하면 재물이 많은 사람을 떠올리겠지만 나의 기준은 조금 특별하다. 잘살기 위해서는 약간의 돈, 자기다움, 자타 간의 소통이 필요하며 셋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고 사는 게 있다면 잘 사는 인생이라고 보지 않는다.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취미도 종교도 꿈도 버리고 사는 친구가 있다. 애견 미용사가 되고 싶다던 친구는 시댁 식구들에게 맞추느라 그렇게 좋아하던 강아지도 꿈도 멀리하며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는데 내 입장은 후자이다. 돈과 시댁 식구 전체와 결혼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의 삶이 내겐 너무나 재미없고 불행해 보인다. 대체 무엇을 위해 오늘의 행복과 나다움을 포기하며 산단 말인가.
노아의 방주 사건이 있었던 때처럼 인류가 멸망하고 나와 가족만 남게 된다면 나는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될까? 종종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비싼 명품 가방이나 액세서리는 하등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마 나는 여전히 읽고 쓰는 재미를 찾아 나설 테니 지폐와 자격증을 메모지로 사용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 상대도 없고, 화려한 백화점도 없고, 우러러보는 타인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존재는 진정 무엇일까. 오늘을 살게 하는 식사, 따스한 햇살, 부드러운 바람, 명랑한 새소리, 곁에 있는 가족이 최고의 보물이자 귀중한 선물이 될 터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누리며 환경과 사랑하는 이들과 자신과도 잘 소통하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음이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집 근처의 공원을 걷는다. 두피에 뜨끈뜨끈한 태양의 열기를 받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새들의 여유로운 노랫소리를 들으러 공원에 간다. 산책하며 호수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음에 감사를 느끼게 되고 수시로 변하는 계절을 볼 수 있는 눈과 자연에 섞인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갖지 못한 것보다 이미 가진 것들에 집중하며 행복의 비결을 만끽하는 것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은 또한 어찌나 감사한지. 원초적 행복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충만한 감사와 기쁨이 발걸음마다 가득해진다. ‘나는 충분히 잘살고 있어.’ 콧노래를 부르며 단순하게 행복해진 나를 발견하고야 만다. 잘 사는 인생에 대한 나의 신념을 담은 시를 하나 소개한다.
풀로 태어난 인생
나의 이름은 풀
나는 풀로 태어났다
남의 상처를 붙이는 역할을 하며
풀로 태어난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가위가 되려고 애쓰지 않으련다
풀로 살면서 가위의 역할을 꿈꾸지도 않으련다
나를 아끼다 굳어버리는 것보다는
다 쓰고 닳아 없어지는 사명을 다하련다
나의 사명을 따라 지어진 대로 나답게 살고 싶다. 풀로 태어난 사람은 풀의 역할을 하고 가위로 태어난 사람은 가위의 역할을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면 그만이다. 풀로 태어나 가위가 되려고 하지 않고, 가위로 태어나 풀이 되려 하지 않는 것. 너무나 당연해서 우스운 소리처럼 들릴 테지만 우리는 이미 남이 정해 놓은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 왔다. 정작 가까이에 있는 내 안의 소리를 외면하고 듣지 못하면서 말이다. '나 잘살고 있어. 어때?' 보여주기식 창구로 사용하던 SNS를 끊었다. 자랑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재미없다. 조금 뒤처지면 뭐 어때. 행복하기 위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아서 행복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