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않는 폰을 바라보며
이력서를 보내고 책상 앞에 앉아서 혹시 올지도 모를 연락을 기다렸다.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는 하임이를 쓰다듬으며 평온과 긴장을 동시에 느꼈다. 십 분가량의 짧은 시간이 지나고 핸드폰이 지잉 몸을 떨었다. 채용 사이트에서 본 번호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지원자님 이력서를 검토해 봤는데요. 혹시 오늘 중으로 면접 보러 오실 수 있으세요?”
“오늘은 일정이 있어 어렵지만 내일은 아무 때나 가능합니다.” 내게 전화를 건 분은 중간에서 최종 보스(?)와의 다리 역할을 톡톡하게 해 주셨다. 이력서 전달도 그렇고 면접 일정 조율도 그렇고 어찌나 송구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러면 내일 아침 아홉 시 삼십 분 어떠신지요?”
“네. 가능합니다.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
“면접 장소와 시간 공지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하임이와 산책 후 만발의 준비를 하고 익숙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전날과 달리 유독 서늘한 아침 공기에 심신이 더욱 긴장되었다. 슈퍼 길치인 탓에 살짝 길을 헤맸지만 다행히 면접장에 여유롭게 도착했다. 커다란 나무 책상과 가죽 의자들이 정갈하게 놓인 면접 장소는 넓고 따뜻했다.
면접관은 세 사람이었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가장 늦게 도착한 최종 보스의 인상은 으뜸이었다. 지원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여태 본 면접 중 가장 이상적이었다. 일방적인 면접이 아닌 서로 묻고 답하기 형식의 면접도 좋았다. 어떤 면에선 내가 면접관이고 그들이 지원자인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혹시 더 궁금하신 사안이 있다면 편히 말씀해 주세요. 뭐든 편히 물어보셔도 됩니다.”
“더 궁금한 건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논의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붙어도 연락드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연락은 드리겠습니다.” 이미 면접이 진행됐기 때문에 나만 별도로 추가 면접을 본 거란 이야기를 듣고 뜨악했다. 괜한 시간을 빼앗은 격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단 말씀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붙을까?
떨어지려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예감은 ‘떨어진 것 같다.’로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오후 다섯 시가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여보. 아무래도 불합격인 것 같아. 연락이 안 온다.” 회사에 가 있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음 쓰지 말고 맛있는 거 사 먹어.” 남편은 곧장 토닥이는 메시지와 함께 용돈까지 보내 주었다. 아휴. 이 남자 왜 자꾸 돈 벌고 싶게 만드는 거야. 복잡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새로 산 잠옷으로 환복하고 전기장판을 고온으로 켜고 침대에 누웠다. 부드럽고 포근한 잠옷이 온몸을 감싸자 긴장이 스르륵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극세사 잠옷만큼이나 부드러운 하임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좋은 경험 했어. 결과는 주님께 맡기자. 그나저나 내가 일을 이토록 하고 싶었던가? 다시 글 쓰는 주부의 삶으로 돌아가는 거 나쁘지 않잖아.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드디어 합격 여부를 통보하는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지원자님. 안녕하세요. 면접 결과 지원자님께서 최종 합격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우와. 대박. 기분 짱 좋다. 오예! 핸드폰을 들고 춤을 추는 나를 하임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산책 다니고 조카들도 자주 만날걸. 자유로운 일상이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