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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채용 공고는 마감되었습니다."

알싸한 표정을 짓는 기회의 여신

by 미세스쏭작가

한 달 전쯤 S회사의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들어 채용 링크를 고이 저장해 두었다. 공고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며 수차례 마음의 발자국을 남겼다. 누가 뽑아 준다고 한 적도 없지만 혹여라도 취업하게 될 경우 많은 변화가 생길 터였다. 우선 반려견 하임이의 거처가 부모님 댁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큰 고민거리였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하임이와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 역시 강하게 들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내 심리 상태는 매우 복잡했다. 그저 만족스럽고 평온하기만 한 일상의 연속선 상에선 제3의 사회화 같은 걸 기대할 수 없었다. 개미 몸통만큼이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 역시 내가 번 돈으로라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냥 산다는 게 뭔지. 나를 만족시키며 사는 건 또 왜 이리도 힘든지 백수의 한숨은 깊어져 갔다.


남편은 내가 돈을 벌든 못 벌든. 집안일을 꼼꼼하게 해 놓든 미뤄 놓든 간에 내 가치를 폄하하지 않았다. "천천히 글 쓰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는 내가 하는 모든 집안일에도 고맙다는 꼬리표를 붙였다.

그런 남편 때문에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이 자주 들었다.

"여보. 나 다시 회사 다닐까?"

"왜? 갑자기?"

"그냥 여러 모로. 나도 자기한테 보탬이 되고 싶어."

"지금도 충분히 보탬이 되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하임이는 어떡해? 하임이 불쌍해서 안 돼. 다른 걱정 하지 말고 편히 쉬어."

분리불안이 심한 하임이. 그런 강아지와 떨어지는 게 무서웠던 우리 부부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유난히 폭한 겨울 날씨 속에서 일주일이 유유히 흘러갔다.


채용 모집 기한을 달력에 기록해 놓았던 나는 공고가 막을 내리기 이틀 전 다시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데 이력서라도 넣어 보자! 면접 기회가 올지 안 올 지도 모르는데 일단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자.


결단과 동시에 뜻밖의 상황을 마주했다.

"본 채용 공고는 마감되었습니다." 헉. 조기 마감인가? 문은 이미 꽝 닫혔고 기회의 여신은 반짝이는 대머리 뒤통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뒤늦게 아쉬운 마음이 들어 잠도 오지 않았다. 불빛 없는 까만 허공에서 왔다 갔다 약을 올리는 대머리 뒤통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천장을 노려 보며 이불킥을 하며 그렇게 새벽까지 허망함으로 물든 시간을 탕진했다.


다음날 아침이 지나가고 오후가 왔다. 나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여전히 서 있었다. 아쉬운 들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쯤 채용 담당자는 점심을 드셨겠구나. 면접은 언제 진행되는 걸까. 여기 나온 번호로 전화라도 해 볼까? 미쳤어? 진짜 왜 이래. 부끄러운 줄 알아.

에라~ 모르겠다. 인생 뭐 있냐. 기회의 여신 뒤통수에 끈끈이라도 붙여서 잡아 오자 이거야. 자킬 앤 하이트가 된 나는 눈에 뭐가 씌었는지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야 말았다.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똥멍청이라고 합니다.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하고 싶었었는데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마감이 되었네요?"...라고 했던가? 악. 하악. 두근두근. 심장 스파이크. 얼굴이 불타 오르네.

"네. 그렇습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아닌데?

"네~."

.

.

.

"저기. 담당자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 이력서 한 번만 검토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대론 너무 후회 돼서 안 될 것 같아요. 면접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이력서만이라도 제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시면... 채용 공고문에 기재된 메일 주소로 이력서를 보내 주십시오. 선임분께 전달드려 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이번엔 기회의 여신이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이봐요. 여신님.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누가 이길지 우리 딱 한 번만 다시 겨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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