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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Dec 22. 2020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머무는 이

나의 아버지

올해도 이제 거의 다 지났고,

나이는 한 살 더 늘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머무는 이가 있다.


나에게는 그 이는

아버지다.


십 대에는 딱 열이 조금 넘는 숫자만큼 아버지를 마음에 담았다.

이십 대에는 그 두배였다.

마흔을 바라보는 삼십 대 후반이 되니, 이제 숫자로 가늠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내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오시고는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으신다. 환한 표정인지 어두운 표정인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거기서는 잘 계실까, 얼굴을 확인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얼굴이 드러나고 눈빛이 번득거린다. 자세히 보니 눈빛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따스함을 가득 담고 날 지극히 바라보시는 아버지.


늘 그리운,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내 마음에 머물렀다 가신다.





처음 피자를 먹은 건 내 나이 다섯 살이었다. 그 날 나는 두 살 터울인 오빠와 욕탕에서 씻으며 놀고 있었다. 피자와 햄버거가 뭔지도 모른 채로 나는 오빠의 구호에 맞춰 햄버거, 피자를 외쳐댔다. 물을 철썩하고 손으로 치며 외치는 "피자, 햄버거"의 소리가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아마도 처음 듣는 단어라 발음이 우스웠던 거 같다.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내 손바닥에 닿은 후 솟구치던 물살이 느껴지고, 깔깔 거리며 웃던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몸을 닦아주시던 아버지께선 함박웃음을 얼굴에 띠고 물어보셨다.


"우리 피자 먹으러 갈까?”

나는 피자가 여전히 뭔지도 모른 채로, 욕탕에서 외치던 목청 그대로

"피자! 피자! 네!"

하고 대답했다. 들뜬 마음에 옷을 입으면서도 발을 동동거렸다.


내 기억 속에 있는 피자 가게의 내부는 까만 타일로 덮여 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은색 테이블이 어두운 벽 색깔에 대비되어 유난히 반짝거렸다. 어른 크기에 맞춰진 금속 의자는 조그맣던 내가 앉기에 너무 컸고, 딱딱했다. 나는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테이블이 아닌 나를 향해 의자를 돌리셨다.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피자 한 조각을 들으셨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피자 도우는 마치 겨울날 지붕에서 녹아내리는 고드름처럼 죽죽 늘어진 하얀 치즈에 둘러싸여 있었다. 치즈 위에는 샛노란 옥수수와 작게 썰린 초록색 피망, 버섯 그리고 검정 올리브가 올라가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 있던 피자가 내 입으로 들어왔다. 부드러운 식감의 고소한 치즈가 입 안에서 맴돌고 그 틈을 타 옥수수가 '톡톡'하고 터졌다.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시며

"맛있어?"

하고 물어보셨다.

먹느라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고개만 끄떡거렸다. 아버지는 정신없이 먹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 날 아버지는 피자를 드시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세수하신 물을 버리지 않고 두셨다가 그 물로 면도를 하셨다. 나는 세숫대야에 차는 물이 얼마나 한다고, 그렇게까지 아끼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은 물 한 방울이라도 아끼시면서 정작 오빠와 나에게는 한없이 주고 싶어 하셨던 나의 아버지.


나에게 피자를 사주셨던 아버지는 34살이었고 나는 이제 39살을 바라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으로 고달팠을 아버지의 삶이 이해되어서, 가끔씩 세월이 흐르는 게 무섭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장난기 넘치던 따스한 눈빛이 너무도 그립다.




겨울에 아버지께서는 깜짝 선물로 군고구마나 군밤을 준비하시곤 했다. 문에 들어서면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재킷 안에서 종이봉투를 꺼내시는 날이면, 오빠와 나는 “우와, 우와”를 연발하며 따스한 봉투를 건네받았다. 열기를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는 양복 재킷 안에 그 뜨거운 것들을 품고 얼마나 재빠른 걸음으로 내달리셨을까.



유독 아버지가 마음에 머무시는 이런 날에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혼자 피자를 먹던 철없던 딸내미가 되어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그러다 그 당시의 아버지보다 훌쩍 더 나이를 먹어버린 딸로 아버지의 삶과 나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오늘도 나는 꿈속에서라도 아버지를 뵙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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