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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영 Jan 13. 2021

고양이의 시선으로

고양이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다.



언젠가 고양이에게 창 밖의 풍경은 사람에게 비교했을 때 티브이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고양이에 대해 관심이 없던 나는 말을 해준 친구를 무심히 바라보고는 ‘어어.’하고 시큰둥하게 대답만 하고 가볍게 넘겼다.


지금 나는 고양이 세 마리와 동거 중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서 혹은, 캣타워에 앉아서 창 밖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고양이의 옆모습을 볼 때마다 고양이가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지나가는 행인, 분리수거를 하는 이웃, 깔깔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종종 보이는 산책을 하고 있는 개들. 우리에게 별 다를 게 없는 그저 일상인 모습이 고양이 눈에는 얼마나 흥미롭게 보이기에 언제나 밖을 보고 있는 걸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침실 하나와 거실(거실 구석에 부엌이 위치하고 있다)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집이다. 지은 지 50년도 넘은 콘도지만 창을 크게 달아 고양이들에게는 60" 티브이보다 큰 스크린이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이사 올 때부터 창문에 달려있던 블라인드는 하얀색이었을 원래 모습은 잊고 아이보리 색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된 것 같다. 빌딩과 함께 지난 50년의 생활을 같이 해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까만 때도 곧곧이 묻어있다. 50년의 세월을 지키겠다는 고집인지 묵은 때는 아무리 닦아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처음 블라인드를 고정할 때 고려한 것은 내 눈높이에 맞추어 밖이 가장 잘 보이는 각도인 180도. 정확히 수평으로 맞춰진 블라인드 앞에서 살짝 무릎 구부린 후 틈새에 눈을 고정시키면, 내 앞에 풍경이 시원하게 틔였다. 무릎을 굽혀 나를 낮춘 만큼, 세상은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러 캣타워에 가까이 갔을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고양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내 얼굴을 비비며 보드라운 고양이의 털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심코 고양이의 시선이 향하는 창 밖을 내다보자, 내 시야의 20%는 블라인드의 끝 부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아, 내 시선과 고양이의 시선의 높이는 달랐구나. 지금까지 20%의 스크린이 어둠 속에 가린 채 티브이를 보고 있었을 고양이들에게 미안했다.


거실 블라인드를 고양이 시선에서 180도가 되도록 바꿨다. 그들의 세상은 20%만큼 더 커지고 환해졌을 테지.


침실에 있는 블라인드도 움직여본다. 침대에 누웠을 때 밖이 훤히 다 보이도록 블라인드를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도록 조정했다. 고양이들이 침대에 누웠을 때 하늘을 보며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들 수 있길 바라며.


다른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니 내가 몰랐던 시야가 추가된다. 이제 지나가는 행인이 더 흥미롭게 보이려나. 나도 캣타워 옆에 서서 고양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창 밖을 내다본다. 세상이 방금 전보다 다소 밝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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