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과거일 뿐

by 안나B

그의 부재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혼자 있을 내가 걱정되었던지, 친구가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하자며 불렀다. 이웃 주민이었던 친구는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심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신체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라며 이웃사촌이라는 장점을 십분 이용하던 사이였다. 이전에는 너무 가깝다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 짧은 거리가 그날은 아무리 걸어도 끝이 나지 않는 길처럼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가 아직 걸을 힘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형태로 길을 따라 가지런하게 지어진 집들이 내가 모국이 아닌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삼 년을 넘게 산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모든 게 너무도 낯설게 보였다. 돌연히 나란 존재가 너무도 이질스러워 당장 이 장소에서 사라져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밴쿠버로 이민 오게 된 유일한 목적이던 그가 사라지고 난 지금, 더 이상 나는 이 곳에 속하지 않았다.


“나 한국에 돌아갈까 봐. 그때, 너무 좋았어. 내가 살던 옥탑방은 진짜 작았지만 늘 웃음소리가 가득한 장소였어. 옥상이 넓어서 자주 바비큐 파티를 했었거든. 그 옥상에서는 일출도, 일몰도 볼 수가 있었지. 집 근처에 산이 있어서 주말마다 오르기도 했고. 복잡한 서울이라고 말하지만 내 삶은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이곳에서 보다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거 같아. 너무 그립다...”


그곳을, 그때를 회상하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그리움이 폭발하듯 쏟아져 밀려 들어왔다. 가슴이 아린 것과 동시에 행복했다. 그리워할 과거와 돌아갈 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안도감을 가져왔다.


그리움은 이전에 살던 경리단에 위치한 옥탑방으로 날 데려갔다. 자취방을 구할 때 나의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월세가 싸야 했고 두 번째, 옥상을 쓸 수 있는 곳이여만 했다. 작은 가건물 단칸방이었지만 내가 내건 두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었기에 상관없었다. 겨울과 여름이 와서야 가건물의 단점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단점을 모두 커버하고도 남을 낭만이 거기에 있었다.

수도관이 얼까 봐 추운 날에는 반드시 물을 틀어놓고 다녀야 했다. 첫 해는 자주 잊어버리고 물을 잠그는 실수를 번복했다. 동파되어 작동하지 않는 보일러와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보며 나의 짧은 기억력을 많이도 원망했다.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던 화장실 덕분에 봄이 오는 것을 화장실의 온도 변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장마철이 되면 더욱 가관이었다. 장대비는 슬레이트 지붕을 미친 듯이 때려재꼈고, 우렁차게 울리는 빗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전화통화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통화를 할 때면 상대방은 빗소리가 전화선을 타고도 들린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장마철은 나에게 여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잠을 잘 수 없는 나날로 기억되었다. 아침에 날씨가 좋아서 창문을 열고 나갔다가 낮에 내린 폭우로 방안에 빗물이 고여 며칠을 고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옥탑방은 서울의 바쁜 삶에 휩쓸릴 때마다 놓치기 쉬운 일상의 기쁨을 알려주었다. 겨울이 가고 조금씩 햇살이 따뜻해짐을 느끼면 어느 순간 개나리, 목련으로 시작해서 벚꽃으로 뒤덮여 가는 동네가 보였다. 매주 토요일에는 남산을 오르며 어느 순간 다가온 봄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했다. 가을엔 선선한 공기를 벗 삼아 옥상에 앉아서 남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는 했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누군가가 나의 하루에 합류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두 개의 창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 발 끝에 위치하던 창문에서는 매일 달라지는 노을의 향연에 감히 눈을 뗄 수조차 없었고, 오른쪽 창문은 마치 액자처럼 서울 타워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옥탑방 안에 가득히 퍼지던 Tracy champman의 Baby can I hold you. 그녀의 저음은 작은 내 방에서 울림이 좋았기에 나의 로맨틱한 옥탑방을 완성시킬 BGM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선택하곤 했다.


소소했지만 낭만이 있었던 서울에서의 삶. 그 낭만의 시작에 그가 있었지만 그가 나의 전부는 아니었던 그때.


고양이의 ‘고’자도 모르던 나에게 자기를 데려가라며 울던 봉이는 우리집에 와 옥탑방 고양이가 되었다. 좁디 좁던, 하지만 우리에게 충분히 넓었던 그 곳을 우리는 참 많이 사랑했다


춥고, 덥고, 시끄러웠던 나의 작은 옥탑방. 그 방은 절대 모두가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나는 참으로 행복했더랬다.




그리움에 빠지고 나니 다음 내가 나아갈 단계는 명확해졌다. 이 곳에서는 이질자 일지라도 한국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속하던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갑자기 여기서 친구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현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비행기표를 예매해서 가족과 친구, 나의 편이 기다리고 있는 모국으로 떠나고 싶었다.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았다.


걱정하는 얼굴로 나의 투정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하길,
“내가 일 년 동안 밴쿠버에서 살고 나서 몬트리올이 그립다며 회사도 그만두고 일주일을 운전해서 돌아갔잖아? 근데 도착하자마자 내가 깨달은 게 뭔지 알아? 밴쿠버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다시 마주한 몬트리올은 더 이상 내 기억 속의 몬트리올이 아니었어.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가 아니야. 날 봐, 지금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꿈꾼 죄로 이사비용으로 돈만 많이 썼잖아.”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아름답게 추억하고 있는 과거는 돌아가는 순간, 모래성처럼 흩어져있을 거라는 걸. 내가 살았던 그 옥탑방은 이제 사라졌고 내가 살던 동네도 이전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같이 웃고 즐거워했던 친구들은 지금의 삶 속에서 바쁠 테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것 역시 내가 그리워하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기다린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친구와의 대화는 내가 늘 가슴 깊숙이 숨겨두고 있던 질문을 끌어왔다.

‘만약 그가 과거를 그리워해서 나에게로 돌아온다면?’


안타깝게도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정답을 알고 있다.

그가 돌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우리가 사랑했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과거와 다른 현재와 미래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와 사랑했던 시간과 서울에서의 삶, 그 모두가 과거로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다. 하지만 언젠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그와의 추억과 나의 지나간 삶을 모두 놓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