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으로 - 백수 일지 85일째
긴 한 주였다.
일이 많아서 길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길었던 이유는 마음이 지쳐서. 몸이 가벼워질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들어 눕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컸던 그런 주였다.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또 사랑하는 사람들은 먼 곳에 있다는 상반된 사실에 마음이 아픈 그런 나날.
월요일에 슬픈 소식을 들었다. 전 직장 동료였던 M의 남편이 주말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정했다. 화요일에 그녀를 보고 오자고. 따뜻한 포옹이 그 무엇보다 필요한 순간이라는 걸 슬프게도 나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이름하여, D의 삶을 축하하는 자리.
그 자리는 D의 부재를 슬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D이란 사람의 존재, 아름다웠던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를 기억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조차 D이라는 사람이 보고 싶어 졌다. 영상 속에서 M와 꼭 손잡고 있는 D, 아들인 K과 장난치는 D, 운동을 하고 있는 환한 웃음의 D.
D의 막내 동생과 시누이가 각각 스피치를 준비했다.
중간중간 농담을 하며 그에 대해서 묘사하는 그들. 앞으로 있을 D의 부재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D의 부재를 단순히 슬픔으로만 부치지 않고 오히려 D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순간을 감사한다던 그들.
우리에겐 무수히 많은 순간이 있다.
태어났고, 죽는 순간이 있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질 순간이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싫어하는 순간이 있고
먹고 마시는 순간이 있고
즐기고 울 순간이 있다.
지금 나의 순간은 감사의 순간이다.
아직 내가 살아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