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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Dec 28. 2017

백수는 도약하기 위한 점프대

백수 일지 - 91일째

아침이든 저녁이든. 하루 종일이든 몇 시간이든. 일을 하고 그에 따른 돈을 버는 입장일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일 그만 하고 쉬고 싶다. 일을 안 하고 쉰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른 중반인 백수가 솔직하게 말한다. 일 절대 그만두지 마라.

일을 그만둔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백수가 된 것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는 갈망이 한몫 차지했다. 열심히 일을 하긴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그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그 바람을 성취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예정대로 라면 내년 3월까지 일하고 쉬는 시간 없이 다음 프로젝트로 달려갈 참이었다.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지금 당장 사표를 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매 달 지불해야 하는 생활비를 생각하면 이뤄져서는 안 되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참으로 달콤한 꾐에 빠져들었다.

지금 나는 백수이다. 다른 점은 서른 중반이다.  

서른 중반이 넘어서 백수가 된 경우, 안타깝게도 주위에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선이  이십 대보다 더 많아진다. 슬프지만 이제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든 나이이란 뜻이다. 한국 식당에 서버로 취직하기 위해 백수가 된 날부터 열심히 이력서를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 곳에서도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레스토랑 매니저로 있는 친구 왈, 언니는 경력 없는 서버로 고용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대부분 이십 대 초반을 쓰거든.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 학생들이 한국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경우가 많아 캐나다 회사에서의 경력이 있는 나에게 서빙 잡을 구하는 건 아주 쉬울 거라고 짐작했다. 다른 사람의 편견 속에 나이가 세우는 견고한 벽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잔고는 채움 없이 비우는 과정만 진행되고 있는 참이다. 그렇다고 습관이 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쉬운 것도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난 온전히 나의 경험과 생활에서 나온 이야기를 적고 있다) 돈을 쓰는 게 너무나 두려우면서도 편안한 의자가 있는 커피숍에서 마시는 맛 좋은 모카가 너무나도 그립고, 그 즐거움을 좇는 게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있다면 일을 그만두고 나서 서른 중반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든 나이라는 걸 깨달았다.  


Lucky 도넛으로도 유명한 49th parallel coffee. 일반 우유 대신에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아몬드 우유나 햄프씨드 우유를 선택할 수도 있다.

몇 번이고 후회했는지 모른다. 희망은 희망사항으로 남겨두고 현실과 타협하여 이 주에 한 번씩 들어오는 체크에 감사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 종 혜택을 즐길 걸 왜 박차고 나왔는지.

어느덧 백수 생활 3개월째. ‘서른 중반 백수의 일지’라고 시작한 매거진이었다. 하지만 '백수라고 칭하는 게 과연 옳을까'라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작아져가는 내 모습에서 백수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었다. 백수의 일상에 대해 쓰려고 하니 나의 하루는 백수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회사원의 하루가 반복인 것처럼. 본인인 나조차도 흥미로운 주제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매거진의 제목을 밴쿠버에서의 소소한 일상으로 바꾸었다.

오늘 친구 A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내가 매거진의 제목을 바꾼 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난 네가 경제 능력을 상실한 백수라는 위치를 밝혔다는 것이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해.
백수는 어딘가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단계니까. 언제까지 백수 이지는 않을 거니까. 네가 성장하고 준비하는 단계를 글로 적어줘. 이 곳은 도약하기 위한 점프대야.


무더운 여름날 들이킨 시원한 맥주처럼 갑자기 속이 쏴악 하고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한 비극의 여주인공 흉내를 하는 건 바로 나였다.  더 이상 자기비하에 빠진 백수이지 않으련다. 원래 계획대로 유쾌하고 솔직한 백수 일지를 써야겠다. 물론 우울함도 있겠지만 이 모든 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헤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니. 고맙다 내 친구 A

끝에 친구에게 덧붙였다. 일이 힘든 건 알겠어. 그래도 절대로 그만두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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