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오후
(2019년 6월 7일)
오랜만에 비가 하루 종일 시원하게 내린다. 이사 온 뒤로 이렇게 집에서 하루 종일 비 내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처음인듯하다. 조금 웃기는 소리일지 몰라도, 10년 가까이 반지하에 살다가 아파트 최고층 (5층..)높이로 이사를 와보니 빗소리가 반지하만큼 생동감 있게 들리지 않는다.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인가 보다. 그런데 얼마 전 에어컨을 새로 설치한 덕분에 지금은 베란다 밖 실외기에 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전보다 빠르게 빗소리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실외기가 이런 역할을 할 줄은 만든 사람도 전혀 몰랐겠죠.) 어쨌든 하늘의 빗물이 땅의 무언가와 만나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반갑고 묘한 기분을 준다.
나는 작년부터 자연, 식물 키우기에 비약적으로 관심이 생겼다. 이사 온 뒤로 조금씩 여러 가지 식물들을 집 안으로 들이고 있다. 자연만큼 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달까. 어쨌든 그렇게 각각의 식물을 거의 사람처럼 느껴 지금은 어떤 가족애..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그중에는 금귤(낑깡) 나무가 하나 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 나무의 잎들이 후두두 하고 쉽게 떨어져 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자리를 옮겨도 나뭇잎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통에 나는 조금 심란해졌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물도 꼬박꼬박 잘 주었다. 얼마 후에 보니 하얀 동그라미 반점 같은 것들이 잎 사이사이에 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순간 약간의 탄식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아 결국 이상한 병균이나 벌레가 옮은 것이로구나”. 난 겁을 잔뜩 먹고 나무를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알고 보니 그 하얀 점들은 아주 작은 꽃봉오리였다. 그동안의 근심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갔다. 건강에 문제가 없는 것도 감사할 일인데 꽃봉오리까지 맺히다니! 그 이후로 식물에 대한 애정은 더 각별해졌다.
모처럼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날이니, 화분들에게 수돗물이 아닌 제대로 된 자연의 빗물을 좀 맞게 해주고 싶었다.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금귤 나무에게. 5층이다 보니 화분에 비를 맞게 할 지면이 없다.(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 실외기가 눈에 띄었다. 작은 화분 하나를 살짝 올려놔봤다. 그러자 강한 바람이 불어 화분이 흔들거렸다. 저 아래에 걸어가는 사람에게 화분이 떨어지는 상상을 하자 아찔해졌다. 아… 봄날의 강릉 바람은 정말 야박하다. 이맘때면 늘 건조한 날씨와 세상을 쓸어버릴 듯한 바람 때문에 강릉은 산불로 몸살이를 한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결국 화분에 비를 맞히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고 실외기 위의 화분을 붙들고 빗물을 먹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누가 보기엔 굉장히 멍청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꼭 화분들에게 신선한 빗물을 선물하고 싶었다. 첫 번째 화분을 가만히 붙들고 있는데 쏟아지는 비에 내 팔과 몸도 조금씩 젖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엔 ‘밖에서 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는데 이래선 원…’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비가 조금씩 몸에 닿는 기분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오늘 강릉의 대기 상태는 ‘좋음’이었고 애플리케이션에는 ‘신선한 공기 많이 마시세요 ^^”라고 알림이 와있었다. 물론 빗물이 신선하다고는 안 했다. 햇빛에도 비타민 D가 있다는데 빗물이라고 대단히 치명적인 성분이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한 화분에 물을 주고 내려놨는데 나머지 세 개의 작은 화분들이 “나는?”하고 내게 물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큰 화분을 제외한 나머지 화분들에게도 그렇게 붙잡고 빗물을 줬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았는데 물을 다 주고 돌아오나니 한 시간 짜리 세탁 코스가 전부 끝나고 알람이 울리고 있다. 아정말이지 하릴없는 한가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물을 주고 있다고 해서 시간을 전혀 쓸모없이 쓴 것이냐고 묻는다면 난 그렇지는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선 여러 가지 글감이나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다. 첫째는 자연의 경이로움이었다. 빗물이 분명 수돗물과는 다른 영양소가 있을 것이라 믿었던 나는 사방으로 분산되어 떨어지는 비를 모아서 화분에 줄 수 있다면 내가 화분을 붙들고 있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비올 땐 실외기 위에 큰 세숫대야라도 올려놓아볼까… 베란다에 깔때기를 부착해서 페트병에 모아볼까… 온갖 영양가 없는 생각들이 머리 안에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접시처럼 넓은 표면의 잎사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알로카시아의 널찍한 잎사귀들은 깊숙한 뿌리 아래까지 물을 도달시키기 위해 위해 비 내리는 하늘을 향해 넓고 푸른 얼굴을 높게 쳐들고 있었다. 넓은 잎에는 빗물이 떨어져 아랫부분에 고였고 고인 빗물은 넘쳐서 줄기를 따라 뿌리가 있는 흙까지 정확히 도달했다. 아… 정말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강한 존재인 자연이 한낱 미물인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할 리 없었다. 그렇게 빗물을 함께 맞으며 식물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자연에 경외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자녀를 키우는 부모 또한 이렇게 자신의 새로운 생명과 함께 성장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그런 뜬금없는 방향으로까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물론 나중에 내 자식이 생겼을 때는 그런 생각의 여유가 없을 성싶지만…
그리고 독일에서 내게 언어를 알려주던 독일인 친구와의 비에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또 어린 시절에 방과 후 비를 잔뜩 맞으며 친구와 달려왔던 추억의 기억도 떠올랐다. 이건 모두 소중한 기억이며 좋은 글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천천히 정리를 해보고 싶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베란다에서 한심하게 화분이나 들고 비를 맞는 남자의 꼴이었지만, 나는 거기에 서 있는 동안 위의 내용과 더불어 몇 가지 반가운 깨달음과 기억의 글감을 얻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어도 떠오르지 않던 일상의 소소한 재미나, 글감이 이렇게 한가한 짓이나 하고 있을 때 비로소 마구 샘솟는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진 이 ‘업’이라는 게 참 웃긴 직업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