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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Mar 13. 2020

14. 독일에서의 첫 식사, 첫 독일 마트

독일의 식료품 물가, 먹고 사는 일에 대하여

 첫날 아침 주인집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본격적인 내 하루는 시작되었다. 아침은 아주머니가 내어주신 크래커와 커피로 적당히 때웠지만 그다음 오후 끼니부터가 슬슬 걱정거리였다.

 버스가 잘 안 다니는 동네에 마트와 집까지의 거리도 워낙 멀어서 큰 맘을 먹고 장을 보러 나가야 했다. 우선 마트에 가서 무얼 사야 하나 또 그것들은 독일어로는 뭐라고 하나 일일이 체크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금방 배가 고파왔다.


 캐리어를 뒤졌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식량을 조금 사 왔던 것이다. 내용물은 오징어젓갈(장시간 보관을 위해서) 하나와 햇반, 참치캔 몇 개였다. '혹시 모를 상황'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만 먼 거리의 마트에 가기 위해서라도 배를 채워야 했다.


 그즈음 공용으로 사용하는 주방에서는 다른 룸메이트들이 식사를 하는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이 그다지 넓지 않은 탓도 있지만 당장 내 상황도 나가서 넉살 좋게 인사할 형편이 아닌지라 그들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인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라도 해야 할 것이었고 안 그래도 심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에 그 공간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것도 싫었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주방 부엌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

 이윽고 주방 부엌이 잠잠해졌다. 난 햇반 하나와 오징어젓갈, 참치 한 캔을 들고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맛있는 파스타를 해 먹었는지 안에는 양파 볶은 냄새와 진한 토마토소스 냄새로 가득했다. 난 '과연 이 조그마한 젓갈을 며칠이나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징어젓갈 한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퍼서 햇반 위에 올렸고 참치캔도 하나를 땄다. 그 초라한 전경이 꽤나 꼴사나워 사진으로 남겼다. 그 당시엔 별로 감정의 동요가 없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독일에서의 첫 식사가 이런 식이 었구나'싶어 마음이 울컥해졌다.



동생은 가끔 날 보며 '사람을 짠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했었는데 저 고춧가루가 지저분하게 튀어있는 쓸쓸한 식탁의 풍경을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백팩을 메고 마트를 향했다. 다행히 주인집 아주머니가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 하나를 빌려주셨다. 만약 장바구니를 들고 도보로 다녀왔다면 한두 시간은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마트는 늘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한국에서도 가족들과 카트를 끌고 마트 안을 자유롭게 다니며 장바구니에 뭔가를 담던 기억이 나에겐 화목한 우리 가족의 대표적 모습으로 남는다. 하지만 홀로 독일 마트에서 장을 본다는 것은 그보다 더 큰 긴장과 흥분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처음으로 독일 사람과 제대로 말과 시선을 섞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말을 못 알아들을 경우에는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거니와 영어도 안 되는 내가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이라도 보게될 때면 정말 도망치고 싶어 질 것이다. 그래서 마트에서 장볼 때 필요한 문장이라던지 단어, 금액을 말하고 듣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정도 훈련해놓았다.


 앞에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내가 원하는 물품의 독일단어도 숙지해야 한다. 내 독일어 능력은 저기 아주머니 등에 업혀있는 한두 살짜리 아이와도 같은 상태이다. 그림이 그려져있지 않으면 강아지 간식이라도 장바구니에 담아 요리 해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러진 않았죠'라고 지금도 백 프로 장담은 못하겠다.) 내가 예상하는 용도에 맞는 물건인지 알기 위해서는 진열대 앞에 몇 분 정도 서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사전, 번역기에 검색을 해야만 했다. 주변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당연하게도 독일 마트에 판매하는 품목들은 한국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 유명한 소시지도 한국에 비해 월등하게 종류가 많고 과일, 야채도 그렇다. 물론 지리적 영향이 크겠지만 일단 땅덩어리가 커서인지 가격도 저렴했다. 늘 알던 이름의 과일도 모양이나 크기가 전혀 다른 것도 재밌었다. 한 번은 태어나 처음 보는 길쭉한 모양의 육류가 있어서 가격표에 붙은 독일어를 번역기에 쳤는데 토끼였다. 마트에서 토끼 고기라... 문화 차이란 그런 것이다.


 독일은 맥주가 물보다 싸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얼핏 들었었는데(솔직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말 그랬다. 당시 가격으로 커다란 캔맥주가 3400원도 아니고... 340원이었다. 맥주의 나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그때 실감했다. 그 외 대부분의 식료품들도 한국의 50-70퍼센트 수준이었다. 물론 브랜드에 따라 마트도 몇 등급으로 세분화되어있었는데 나는 중저가의 매장을 애용했음에도 품질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 육류는 더 싼 편이었다. 스테이크용 돼지고기 목살이 싼 경우에는 750g에 3700원 정도였다.(한국의 고깃집 1인분이 보통 200-220g 이다.) 마트를 좋아하고 또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부류의 기억들이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두둑해진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그 차분한 풍경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곳에서라면 생계의 위협을 적게 받으면서 내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세계적으로도 물가안정으로 최고인 나라와 비교는 그렇지만 적어도 식료품의 물가만이라도 이렇듯 안정이 된다면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질 수 있을까 싶었다. 일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충분히 할애하면서 살 수 있는 안정적인 삶. 그건 특권층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것일까? 이국 땅에서의 이런 체험은 나를 잠시 희망적이게 만들었다가 이내 울적하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본 물건들을 펼쳐보았다. 내 눈에 대충 괜찮아 보이는 것을 담기는 했는데 막상 요리로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암담해졌다. 너무 무작정 계획 없이 담아버린 것이다. 적당히 양상추에 드레싱을 두르고 슈니첼(독일식 돈가스)을 기름에 튀겨 먹었다.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을 대비해 양배추 절임도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곁들여 먹을 맥주는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사서 레몬맛 맥주를 사버렸다. (이쯤되면 레몬식초를 사지 않은 것은 감사해야 하나? 하하) 레모네이드 같은 맛이 날 법도 한데 맥주와 레몬의 조합은 썩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까 전에 먹은 점심식사보다는 훨씬 형편이 나았졌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


 아래는 그 이후에 며칠동안 해 먹었던 요리(?) 사진이다. 그런데 솔직히 맛있게 먹은 기억이 없다. 그랬으면 사진을 찍지도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주인집 아주머니가 마트의 식재료로 고추장이나 배추김치를 구색에 맞게 만들어놓은 걸 조금 나눠주셔서 보물단지처럼 모셔놓고 아껴먹었다. (솔직히 맛은 다른 요리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지만... 그래도 정말 감사했다.)




예전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다. 맛을 본 뒤 '역시 관두길 잘했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고추장이나 김치의 맛은 한국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게는 단비처럼 느껴졌다.
빵도 태우고, 소시지도 먹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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