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Nov 03. 2021

강릉에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

뒤늦은 신혼집, 40년 된 구옥 주택을 리모델링하다.

혼자 살기 위해서 구했던 오래된 5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없음...)

 2019년, 수유리 반지하 집을 빼고 무작정 강릉에 이사와 혼자 살 아파트를 구해서 살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되고 좁은 아파트였지만 앞뒤로 하늘과 소나무 숲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2020년, 마치 기적처럼 아내와 결혼을 했다. 고맙게도 아내는 나를 따라 강릉으로 와주었다. 난 아내에게 서울을 떠나 이곳에서 우리만의 깃발을 꽂아보자-고 말했다. (늘 말은 청산유수~) 그동안 혼자 살던 집에서 아내와 함께 지냈다. 혼수도 신혼집도 없이 좁은 집에서 우리는 방 하나에 짐을 몰아놓고 남은 방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못하고) 24시간을 함께했다. 아내에겐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돌아보니 재밌고 또 행복했다. 보다 넓은 집을 구하고 싶어 부동산을 뒤져봤지만 우리 취향과 형편에 맞는 집이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갑자기 오어즈를 오픈했다. 집이 좁아 그림과 짐을 보관할 창고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다 보니 갤러리 겸 편집샵 같은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우린 이왕이면 고층아파트보단 조금이라도 나무를 볼 수 있고 더 욕심을 내면 작은 테이블을 펼칠만한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주변 지인 소개, 벼룩시장과 네이버 부동산, 교차로 등… 온갖 발품을 팔았다. 약 10개월 동안 과장 보태 거의 3,40군데가 넘는 단독주택, 아파트… 심지어 산 깊숙한 곳 고라니가 종종 출몰한다는 빈 땅까지… 집을 구하기 위해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강릉은 서울과 달리 부동산 사이트에 좀처럼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죄다 현장으로 긴급출동이다. 설레발 치지 않는 법, 마음을 비우는 법 등을 배웠다. 이제 강릉 어디를 가도 대충 그 근방에 우리가 봤던 집이 하나 정도는 있으며 그 지역의 특성 같은 것들을 꿰차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건축물대장과 토지대장을 은밀하게 열람했던가…


 2021년 봄, 드디어 우리의 신혼집을 계약했다.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 아내가 인터넷에 새로운 매물이 막 떴으니 한 번 가보라고 했다. ‘허탕 치는 것도 지치는데 비 오는 날 집을 보라니…’ 투덜대면서 갔는데 그곳이 지금의 우리집이 되었다.



집 계약한 날 / 철거 후


 겉 보기엔 멀쩡했던 그 집은 40년 된 집이었고 수도배관, 배수구, 정화조, 보일러 등 쓸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미리 알았다면 계약 안 했겠지) 그렇게 안에서 바깥으로 집전체를 뜯고 고쳤다.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해준 고마운 이는 멋진 듀오 콩과하(@duo.kongha)이다. 처음 오어즈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며 인연이 시작되었다. 서울과 강릉을 셀 수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수고해준 두 분에게 정말 감사하다. 우리의 청첩장과 오어즈(Oars)의 디자인 테마가 보트라는 것을 알고있던 혜빈님은 우리집의 이름을 ‘보트하우스’라고 붙여주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정성갑 님의 ‘집을 쫓는 모험’이라는 책을 보면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럭셔리하게 사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이어령 선생님은 “이야기 속에 살아라”라는 말씀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은 주변에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 럭셔리한 삶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집 여기저기에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요청을 두 분에게 전달했고 그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경청하고 몹시 애를 써주었다. 자기 주장은 있으면서 기술적 이해가 전무한 클라이언트가 최악인데 우리가 그랬던 것 같다. 이 기회를 빌어 진심의 감사를 전한다. 부디 다음엔 우리처럼 까다롭고 예산 부족한 클라이언트를 만나지 않고 재밌는 일만 해나가시길… 



 어쨌거나 이런저런 좌절과 번뇌의 시간을 마무리 지으며 드디어 신혼집을 구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이 공간에서 아내와 더 많은 추억 그리고 좋은 작업 해나가겠다는 포부를 이 곳에 기록해본다.



고생해준 디자이너 콩과하
철거 하던 날 / 현재
우리가 가장 이 집에서 마음에 들어했던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