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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건 Apr 22. 2019

호모 에렉투스, 문득 걷기


열상이나 화상 입은 아이들을 치료하며
보호자들에게 입버릇처럼 던지던 질문이 있다.

"자제분은 언제부터 걸었어요?"


돌아오는 답변들은 천차만별.
"10개월부터~"
"12개월 되니까..."
"14개월에야~"

​그런데, 내가 설문한 표본집단엔
유독 단기속성반의 걸음마 신동들이 많았다.

​반면, 상당히 일찍 말문이 트여
깜찍한 말재간과 깜놀 말발을 뽐내는
조안이 의외로 발재간을 부리지 않으니
불안한 우려가 솟구치는 건 당연지사.

'발 없이 말만 천 리를 가면 어떡하지...'

​걸음마를 주저하는 원인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성미가 급해서 그렇다.
빨리 가고 싶은데,
걷는 것보단 기는 게 빠르니깐."

​"강아지 키워서 그렇다.
네 발로 다니는 생명과 합숙하니
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거다."

​예방접종을 위해 들른
소아청소년과 외래의 교수님께선
제기된 모든 가설을 제치며 말씀하셨다.


"겁이 많으면 그럴 수 있어요."


조심성 많아 겁도 많은 조안이
walker의 보좌를 받아 몇 발짝 걸음마 떼다가
털썩 주저앉는 모습은,

두발자전거 처음 배울 때
뒤에서 보좌하는 손길 믿고
페달을 밟으면서도 불안하게 휘청이던
유년시절의 나를 보는 듯했다.

​그렇게 주저하며 주저앉기를 여러 번.
발연기의 NG는 숱하게 반복됐다.

​대한민국 또래집단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는
아이로 결론 내려던 4월의 어느 날,
하조안 양이 귀가한 날 향해
호모 에렉투스의 진면목을 선보이며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나잇값 할 수 있다는 걸 인증하듯,
'나는 두 살'이 박힌 라운드티를 입은 채.

엉금엉금 기던 아기가 성큼성큼 걷는 장관은
네 바퀴로 구르던 범블비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의 장면처럼 놀라운 경이였다.


인간의 특권인 직립보행의
맛깔을 제대로 깨달은 조안은
요즘 외계어 방언을 지줄대며
지구별의 봄날을 '눝눝눝' 누비고 있다.

​Walking, 걷는다는 게
거저 자연히 얻어지는
그저 당연한 사태가 아니라,
부단히 반복된 working 끝에
성사되는 거사란 사실을
조안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두 발로 늠름하게 걷는 우리 모두는
체념하지 않고 될 때까지 반복해
반등(攀登)의 반전을 체험한 집념의 결실들이다.



그러니,
못 한다고 주저하거나
안 된다고 주저앉으면 되겠는가.

편안히 기는 일상에 익숙해진 나도
서서 걷는 불편한 일에
서서히 도전해볼 생각이다.

여생에 여한을 남기지 않고자
과감히 시도하는 그 거사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수시로 이렇게 자문하련다.


You can talk the talk,
but can you walk the walk?
(말은 번지르르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실제 행동도 그렇게 잘할 수 있겠는가?)


자빠져도 자꾸 걷듯, 부단히 시도!





6년 전, 초보 아빠로 하여금
여러 상념에 빠져들게 했던 딸내미는
어느새 유치원 벗어나 초딩이 되었다.


졸업식 사진과 입학식 풍경.

튼튼한 두 다리로 전국 각지와
지구촌 곳곳을 누벼왔던 조안.


신사와 료칸 누비고 기차 타고 선물로 받은 원피스 입고.

인플루엔자 A와 B가 겹쳐서
자택에서 룰루랄라 요양 중이다.



토요일 아침, 부시시 눈을 뜨더니
아파서 걷지 못하겠다며 한동안 징징대다
어릴 때 타던 붕붕이를 몰고 집안을 누빈다.



어서 컨디션 회복하렴.
아빠랑 신나게 뛰놀자.
아소산 누빌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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