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랜드 망고젤리
미국으로 이민하는 식솔 챙기고 2주 동안 자가격리 들어간 동료의 빈 자리 채우느라 보름 동안 ER에서 쭉 달렸습니다. 피로가 중첩되는 게 무엇인지, ‘피로의 복리효과’ 따위를 체감하게 해준 진료 릴레이의 마지막 밤, 아홉 살 초딩의 우하복부 통증 주범이 충수돌기염임을 보호자에게 알려드린 직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낮에 본원 응급실 거쳐 성모병원으로 건너간 폐렴 환자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양성이었네요. 하여, 두 시간 동안 응급실 폐쇄하고 방역을 하였답니다. 더불어 낮에 일했던 의료진들의 코로나 검사도 해야 했어요. 데이 근무 마치고 귀가한 이들과 이브닝 근무 마치고도 퇴근 못한 이들을 자정 무렵 병원 밖 선별진료소에 소집하였고요. 제가 모처럼 검체 채취를 줄줄이 했습니다.
직원들의 코와 입을 막대기로 푹푹 찌른 직후에 알게 된 사실이 또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8시 반까지 24시간 동안 일하던 인턴도, 코로나 검사 직후인 자정을 기점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네요. 하여, 전공의 시험 치뤄졌던 지난 주말처럼 저 혼자 아침까지 쭉 초진을 했습니다.
하루키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도 인용한 바 있는 마오쩌둥의 말을 적극 실천한 셈입니다. 모 주석 가라사대, “피곤은 피곤으로 극복해내야만 한다. 피곤을 극복해내는 건 피곤 이외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피곤 받고 더블로 가는 와중에 응급실 입구의 씨큐리티 직원께서 절 불러 세우시더군요. “과장님 앞으로 뭔가 와있던데요.”
피로처럼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 틈바구니에서 제 이름 박힌 쿠팡 소포를 발굴했습니다. 뜯어보니 코코아랜드 망고젤리!
오픈워터 해양실습차 고성 천학정 리조트에 갔을 때 인연 맺은 정슬기 다이버께서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왕초보 다이버에게 싱싱한 해산물을 건네주셨던 분이 불우과장돕기에도 힘 보태셨네요. 망고 좋아해서 망고스무디 즐겨 마시는데요(공차의 망고스무디가 짱).
젤리 하나 씹으니 태국 후아힌의 망고밥도 떠오르고, 4년 전에 홍형과 가장이랑 DDP 서울 국제핸드메이드페어 둘러보다 얻은 스티커 문구도 떠올랐습니다. ‘맘고생 고망, 아프지 망고. 시작은 쳐 발리나, 그 끝은 달콤하리라.’
다정다감한 정 다이버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만년 과장이 달콤하게 당직 끝낼 수 있었네요. 바다에서 다시 만날 날 학수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