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일우 Dec 22. 2020

피곤하지 망고

코코아랜드 망고젤리

경자년 6월 7일 우포늪 나들이. 인적 드문 명소를 유유히 둘러봤습니다. 초록색 마스코트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닮았더군요.

미국으로 이민하는 식솔 챙기고 2주 동안 자가격리 들어간 동료의 빈 자리 채우느라 보름 동안 ER에서 쭉 달렸습니다. 피로가 중첩되는 게 무엇인지, ‘피로의 복리효과’ 따위를 체감하게 해준 진료 릴레이의 마지막 밤, 아홉 살 초딩의 우하복부 통증 주범이 충수돌기염임을 보호자에게 알려드린 직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마스크 착용 독려 문구 중 단연 돋보이네요. “코가 커서 마스크 못 쓴다고 변명하지 마라. 나도 팬티 입고 다닌다.”

낮에 본원 응급실 거쳐 성모병원으로 건너간 폐렴 환자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양성이었네요. 하여, 두 시간 동안 응급실 폐쇄하고 방역을 하였답니다. 더불어 낮에 일했던 의료진들의 코로나 검사도 해야 했어요. 데이 근무 마치고 귀가한 이들과 이브닝 근무 마치고도 퇴근 못한 이들을 자정 무렵 병원 밖 선별진료소에 소집하였고요. 제가 모처럼 검체 채취를 줄줄이 했습니다.


인생의 본질이 게임입니다. 코로나 스테이지 얼른 넘기고 싶네요.

직원들의 코와 입을 막대기로 푹푹 찌른 직후에 알게 된 사실이 또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8시 반까지 24시간 동안 일하던 인턴도, 코로나 검사 직후인 자정을 기점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네요. 하여, 전공의 시험 치뤄졌던 지난 주말처럼 저 혼자 아침까지 쭉 초진을 했습니다.


아무리 여건이 열악해도 생각은 열정적으로, 긍정적으로.

하루키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도 인용한 바 있는 마오쩌둥의 말을 적극 실천한 셈입니다. 모 주석 가라사대, “피곤은 피곤으로 극복해내야만 한다. 피곤을 극복해내는 건 피곤 이외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빠른 배송, 쿠팡맨에게도 감사.

피곤 받고 더블로 가는 와중에 응급실 입구의 씨큐리티 직원께서 절 불러 세우시더군요. “과장님 앞으로 뭔가 와있던데요.”

쫄깃하고 달콤합니다.

피로처럼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 틈바구니에서 제 이름 박힌 쿠팡 소포를 발굴했습니다. 뜯어보니 코코아랜드 망고젤리!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고성 천학정 리조트에서 난생처음 바다에 풍덩 빠져 봤습니다. 오픈워터 실습 즐겁게 성료했네요.

오픈워터 해양실습차 고성 천학정 리조트에 갔을 때 인연 맺은 정슬기 다이버께서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왕초보 다이버에게 싱싱한 해산물을 건네주셨던 분이 불우과장돕기에도 힘 보태셨네요. 망고 좋아해서 망고스무디 즐겨 마시는데요(공차의 망고스무디가 짱).

젤리 하나 씹으니 태국 후아힌의 망고밥도 떠오르고, 4년 전에 홍형과 가장이랑 DDP 서울 국제핸드메이드페어 둘러보다 얻은 스티커 문구도 떠올랐습니다. ‘맘고생 고망, 아프지 망고. 시작은 쳐 발리나, 그 끝은 달콤하리라.’


인생이 재미 없어서 잼을 팔고 있는 회사, 잼있는 인생.
가늘고 길게, 만년 과장.

다정다감한 정 다이버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만년 과장이 달콤하게 당직 끝낼 수 있었네요. 바다에서 다시 만날 날 학수고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쿰바카 호흡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