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저주의 말이었는데 어이없게도 웃고 말았다. 그때 정신 못 차리고 웃은 죄인지는 몰라도 지금 나는 더울 때 더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더 추운 곳에서 일한다.
그 선생님의 예언은 적어도 나에게는 적중한 것 같다. 나는 앞자리도 뒷자리도 아닌 중간쯤 앉아서 공부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40대 후반까지는 나도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일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운이 다했는지 (중간에 앉아서 공부했으니 반쯤은 노력했기에?) 지금은 더울 때 더 더운 곳에서 일한다.
출장세차를 하며 4번째 여름을 맞았다. 뱃살이 나온 나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노동이 아니어도 주룩주룩 땀이 나는데 집중해서 일을 하면 소나기처럼 땀이 난다.
내가 일하는 환경은 그때그때 다르다. 뙤약볕 아래 주차하시고 나를 부르시는 고객님(피할 그늘 한 점 없는 곳), 필로티 구조의 빌라에서 부르시는 고객님(물론 응달이 있지만 굳이 양달에 주차를 하시고), 주상복합 지하 5층에서 부르시는 고객님(뙤약볕 아래보다는 낫지만 역시 땀이 나긴 마찬가지다.)
4번의 여름을 겪으며 나름대로 폭염에 대비하고자 마련한 몇 가지 아이템이 있다.
팔토시와 헤어밴드가 있다. 헤어밴드로 머리 쪽에서 솟구쳐 나오는 땀을 저지하지 않으면 눈으로 땀이 흘러 앞을 볼 수 없다. 또한 팔토시를 하지 않으면 팔뚝이 검게 탈뿐만 아니라, 오돌토돌 두드러기가 난다. 나에게 햇빛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이 일을 하며 알았다. 첫해 여름에 겁도 없이 직사광선 아래에서 팔뚝을 드러내고 일하다가 한동안 피부과를 방문해야 했다. 그러니 여름엔 꼭 팔토시를 한다.
다음은 얼음 조끼다. 매쉬 소재의 조끼 안쪽에 주머니가 4군데 있다. 천천히 녹는 냉매가 들어간 얼음을 네 군데 주머니에 채워 넣고 착용하는 조끼다. 이 조끼를 입으면 당장은 시원하다. 한 20분 정도 시원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조끼 안쪽에 습기가 차게 된다. 땀과 습기가 힘을 합쳐서 몸통을 공격하면 꿉꿉함이 더해진다. 그러니 얼음 조끼의 효과는 대략 30분 정도다.
작년에 큰맘 먹고 도입한 여름 아이템은 선풍기가 달린 조끼다. 작년에는 한 곳에서만 판매했는데(그것도 일본직구로), 올해 들어 여기저기서 판매를 하고 있다. 나름 만족스러운 아이템이지만 이 역시 일을 계속하다 보면 더운 바람으로 변한다.
끝으로, 아예 에어컨이 달려있는 조끼가 있다. 이것은 가끔 유튜브로 사용법만 볼뿐 구매하지는 못했다. 가격이 무려 80만 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보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외양이다. 사용 후기를 보면 이것 역시 완벽한 아이템은 아니다.
결국 완벽하게 더위를 막아주는 아이템은 없다. 죄다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빡세게 공정 하나를 진행하고 내 차 안에 들어가 땀을 닦고, 자동차 에어컨을 최대로 틀고, 아이스박스에 준비한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며(이놈의 얼음물을 마실 때마다 수학선생님의 저주 섞인 말씀과 야비한? 미소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