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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Aug 12. 2024

타월과 걸레

걸레로 닦을 텐가, 타월로 닦을 텐가

출장스팀세차 창업을 하며 가맹 본사 교육장에서 2주간 숙식 교육받았다.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과 기술을 배우는 시간으로 교육 당시엔 시간이 길게 느껴졌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2주가 아니라 한 달을 해도 짧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과정 중 자동차에 탑재하고 다니는 장비를 다루는 시간도 많았다. 10 BAR의 압력으로 180도의 고온으로 스팀을 만드는 등유식 스팀기, 공기 압력을 사용하기 위한 컴프레셔, 자동차 광택작업을 위한 폴리셔, 에어컨 청소에 필요한 에바클리닝용 내시경 장비 등등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장비들이 있지만 무엇을 하든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타월'이다.


'타월'이란 단어는 평상시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사우나에서 때를 밀 때 쓰는 '이태리타월'을 지칭할 때나, 권투 경기에서 선수가 그로기 상태가 되어 코치진이 링에 '타월'을 던져서 패배를 인정할 경우에나 들어봤다.


타월은 차량의 내외부 표면에 직접 닿는 것이다. 나의 노력과 기술은 타월을 통해 차량에 전달되고, 그것들의 총합이 고객에게 전달된다. 창업 기술 교육 중, 강사는 '걸레'라는 용어 대신 '타월'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고객의 재산 목록 5위 안에 드는 물건이 바로 차량인데, 그 차를 걸레로 닦는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 않냐고 했다.


처음엔 '점심밥'을 '런치'라고 부른다고 품격이 올라가나? 하고 약간 의아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강사의 말이 맞다. 걸레라고 하면 정말 더러운 것을 닦는다는 느낌이 든다.  걸레 자체도 더럽다고 느껴지는 데다 더러운 것으로 더러운 것을 닦다니? 고객의 소중한 차량도 홀대하고, 차량을 닦는 도구도 홀대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워낙 '걸레'라는 표현에 익숙해져 있던 탓에 내 입에서는 '타월' 대신 '걸레'라는 단어가 툭툭 튀어나왔다.


사전에서 검색해 봤다.


타월

무명실이 보풀보풀하게 나오도록 짠 천

또는 그것으로 만든 수건


걸레

1. 더러운 곳을 닦거나 훔쳐 내는 데  쓰는 헝겊

2. 너절하고 허름한 물건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전적 풀이로 볼 때 기능면에선 타월과 걸레가 동일하다. 그런데 걸레에는 '너절한' '허름한'의 2번 풀이가 추가되어 있다.  그러니 고객의 차량을 닦는 것은 '걸레'가 아닌 '타월'로 부르는 것이 맞다.


카워시 테크니션(세차업자)의 타월은 화가의 붓, 군인의 소총, 작가의 연필, 청소부의 빗자루, 목수의 대패와 같다. 초보일 때는 멋모르고 열심히 하지만 연차가 쌓이다 보면 도구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공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결과물도 달라진다.


고객들은 어플로 주문을 예약하면서 메모를 통해 주의사항이나 특별히 부탁할 것들을 적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꼼꼼하게 부탁드립니다', '랩핑이 되어 있는 차량입니다', '전면부의 벌레사체가 많아요' 등이지만 가끔씩 '내부 먼저 하고, 외부 부탁 합니다'라는  요청 사항이 쓰여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외부를 먼저 하면 외부에 사용한 타월을 내부에도 사용할 까봐서 인 듯하다. 또는 외부 세차를 하며 내 몸에 묻은 외부의 오염이 내부 세차 시 옮겨질까 봐서인 듯도 하다.


10년 전(어쩌면 요즘도) 동네 허름한 세차장에 가면 아저씨 두 분이 러닝에 슬리퍼를 신고, 심지어는 담배까지 입에 물고, 물을 뿌려 대곤 했었다. 당연히 외부에 사용한 타월을 내부에도 사용하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요즘 그런 식으로 했다간 금방 망하고 말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요금이 싸서 그런 곳에 가거나, 고객이 아예 세차 과정을 보지 않으니 용인되었을 일이다.


단정한 유니폼을 갖춰 입어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고 위생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타월 역시 내부용 외부용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나의 경우는 외부용 타월은 파란색, 내부용 타월은 노란색, 왁스 버핑용 타월은 회색, 유리용 타월은 하늘색을 사용한다. 물론 세탁도 각각 한다. 사용기한이 되어 버리게 되는 타월은 수시로 골라내서 휠이나 하부 틈새 등 기름때를 닦는 마지막 임무를 다한 뒤 장렬하게 폐기 처분한다.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도구와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 고객의 니즈에 맞추는 것, 친절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도구에 믿음이 없고, 도구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백전백패할 것이다. 이젠 절대로 걸레라고 부르지 않는다. 고객의 소중한 차량을 관리하는 타월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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