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세차할 때 다가오는 사람들
월요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납니다. 7시 반까지 준비를 하고, 8시에 현장에 도착합니다. 매주 월요일에 진행하는 정기 세차입니다. 시승차를 운영하는 곳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7대를 세차한 지도 3년이 넘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 월요일은 무겁고, 힘겹고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의 묵직한 느낌은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업무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대부분 '사람'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시 돌아온 월요일엔 다람쥐까진 아니더라도 햄스터쯤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월요일 오전 8시까지 현장에 도착하면 7대의 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차들만 저를 기다립니다. 시승센터엔 시승 안내 직원이 상주하지만 아직 출근 전입니다. 출근을 한다고 해도 차주가 아니니 저는 세차를 하고 직원은 자기 일을 합니다. 차주는 자동차 회사이고 고객은 그곳에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회사원 일 때에는 주변에서 뭐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출근을 하면 연극이 시작됩니다. 직급에 맞는 복장과 말투, 업무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 커피 한잔을 마주한 약속대련, 회장실에 불려 가 난데없는 업무를 받아서 나오는 상황. 직장 내 갑질, 줄 서기, 성과에 대한 불평등한 보상, 눈에 빤히 보이는 이기주의를 포장하여 전달하는 상사, 편하고자 대드는 부하.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조리들이 지금 제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일들이 일어납니다. 간혹 처음부터 끝까지 세차의 과정을 지켜보는 고객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결과만을 봅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일합니다. 말상대는 자동차와 나 자신입니다. 어떤 날은 사람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날이 없기도 합니다.(고객들은 주차장에 오지 않고 차키를 내부에 두거나, 원격으로 열어 줍니다. 통화 혹은 문자만 오갑니다.) 이런 나날들이 계속되니 외로움을 느낍니다.
혼자서 엉뚱한 짓을 하고 혼자서 웃습니다. 내 실수를 봐줄 동료는 제게 없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게 비포와 애프터를 극명하게 차이 나도록 시공해도 칭찬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회사가 가끔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지지리 궁상맞게 뒷담화를 하고, 업무적인 갈등도 하고, 한잔 하며 화해도 하고, 가식적인 대화도 하던.
저는 이 일이 외로운 일이라고 느끼지만, 정말 외로울까 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객 이외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경비원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주로 제가 세차를 하는 모습을 본 입주민이 관리실에 신고를 해서 출동합니다. 지하에서 세차를 하면 안 된다며 나가라고 합니다. 몇 년 전 천안에서 스팀기 화재 사건 이후로 지하에서 세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장비는 그럴 위험이 전혀 없는 기계라고 설명해 드립니다. 정말 간절히 설명하면 서둘러서 하고 가라고 합니다. 자신들은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출동해서 해결해야 하는 '을'이라고 하면서요. 그러니 저는 '병'이나 '정'쯤 됩니다.
한 번은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셔서 약품 냄새가 진동을 하니 나가라고 합니다.. 스팀건을 거리를 두고 손바닥에 쏴서 물을 받은 뒤 제 얼굴에 바르며 말씀드립니다. "스팀은 수증기라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지하라서 자동차 매연 냄새가 나는 겁니다" 미심쩍어하며 고개를 돌리지만 냄새는 핑계일 뿐 지하에서 세차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필로티 구조의 빌라에서 세차를 할 때는 난데없이 3층 창이 열리며 시끄럽다고 합니다. 자신은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인데 왜 이러냐고 합니다. 스팀을 쏘거나 청소기를 돌리면 소음이 발생합니다. 소음이 나는 시간은 10분~20분 정도니 죄송하지만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부탁드리면 말없이 창문을 닫습니다. 이후 저의 손과 발과 머리는 더 속도를 내야 합니다.
말쑥하게 양복을 입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차에 대해 이것저것 묻습니다. 힘들지 않냐고도 물어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대부분 다단계입니다.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버는 복이 제게는 없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기에 귓등으로 듣고 명함을 받고 보내드립니다.
"그거 하면 얼마나 벌어요?" 하며 대뜸 물어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괜찮으면 본인도 하면 어떨까 하고 말을 거는 거지요. 찬찬히 설명해 드리지만, 권해드리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힘듦을 감당하라고, 아주 좋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씀드리고 판단은 본인이 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그리고 무례하게 처음부터 얼마 버냐고 묻는 사람이 참을성 있게 이 일을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한 번은 주차장이 넓은 커피숍 앞에서 세차를 한 적이 있었는데 커피숍이 통창이었나 봅니다. 창가에 앉은 주부 4분이 본의 아니게 창가에 앉아 제가 하는 일을 1시간 반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직관한 것입니다. 세차를 마칠 무렵 커피숍에서 나오신 그분들은 다 지켜봤다며, 참 좋은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차를 청소해 주는 서비스가 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서비스를 왜 몰랐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앞을 다투어 명함을 받아갔습니다. 물론 추후 연락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명함을 달라고 해서 받아간 100명 중에 한 분 정도가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종류만 다를 뿐 제게도 말을 나눌 사람이 분명 있었네요.
그러니 외롭지만은 않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