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업체에 다녔다. 현장 조직에서 15년, 본사 교육부서에서 6년을 보냈다. 현장 조직 근무 중에는 2~3년마다 관리지역을 옮겨 다녔다. 강동구에서 3년을 근무했다면, 이후는 분당, 노원, 강남, 송파 순으로 이동했다. 지역을 옮겨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청소와 정리정돈이다. 이게 돼야 다음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나름 정리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상태는 어떤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불안하지 않았다. 급기야는 주말을 이용해서 정리수납 업체에서 교육을 받고, 정리수납 2급, 1급, 정리수납 강사자격을 취득했다. 물건의 정리를 좀 익히고 나니 생각에 대한 정리도 해야겠다 싶어 디지털 마인드맵인 '싱크와이즈'라는 프로그램의 강사자격도 취득했다.
내친김에 퇴사 후 2개월여 동안은 청소학원에 다녔다. 청소를 학원에 가서 배우는 것도 생소했지만, 그 분야가 방대함에 또 놀랬다. 어찌어찌 배워서 청소대행사 2급 자격을 취득했다. 정리수납이든 청소든 마인드맵이든 자격증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없다. 자격증은 그 분야에 대한 맛을 약간 봤다? 정도였다. 그것으로 밥을 지어먹으려면 전부 걸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과 자원은 턱없이 모자란데 보잘것없더라도 내 전부를 걸고 하기가 두려웠다.
정리수납과 청소는 둘 다 팀으로 일을 해야 한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비슷하면서도 혼자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있었다. 출장스팀세차였다. 게다가 그 일은 프랜차이즈화 되어 있어서 교육 후 바로 혼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며 지친 것도 퇴사의 이유 중 하나였는데 혼자서 일한다는데 매력을 느낀 듯하다. 그리고 정리수납과 청소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차는 확장성이 좀 떨어진다.
그렇게 선택한 후 4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실수와 보람과 생각지도 못한 팁들을 익혔다. 이쪽 업계에서 10년, 20년을 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기술적으로 막혔을 때, 고수의 한 마디 팁으로 귀신같이 해결되는 일이 많았다. 그 기술적 한마디를 할 수 있는 것에 얼마나 많은 피땀눈물이 있었을지 어렴풋이 알게 됐고, 그것이 모두 돈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청소든 세차든 도제식 창업과정이 있는데 그 비용이 몇백만 원에 이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 비싸다고 여겨지겠지만 지금은 결코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흘릴 피땀눈물을 닦아주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물론 얼치기 사기꾼 같은 창업교육업체는 제외다.
정리에는 3가지 뜻이 들어있다. 정리, 정돈, 청소다.
정리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불필요한 물건도 싸매고 산다. 저장강박증 환자를 다루는 방송을 보며 혀를 끌끌 차지만 정작 본인 집에도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두고 있다.
정돈은 정리를 통해 남긴 필요한 물건에 주소를 붙여주는 것이다.
언제나 그 물건이 필요하면 바로 찾아갈 주소에 그 물건을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다음에 들어올 물건도 갈 곳이 없기에 사람이 주인인 공간에 물건이 주인 행세를 한다.
끝으로 청소란 처음 구매했던 상태에 가깝게 물건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다.
깨끗하게 관리해야 사용성도 좋고, 계속 아낄 수 있다.
정리수납과 세차는 정말 관계가 깊었다. 외부 세차는 정리수납의 관점에서 보면 청소다. 자동차 도장면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여 깨끗해진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더럽던 차의 외관이 깨끗해지다 못해 광까지 나면 차주는 정말 좋아한다. 차는 깨끗할수록 관리하고 싶어 진다. 신차를 사면 애지중지하며 관리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내부세차는 정리수납의 과정 중 정리부터 시작한다. 바닥매트를 빼낸 후, 큼직한 쓰레기(버릴 것)를 버린다. 이것이 정리다. 이후 컵홀더, 도어포켓, 대시보드에 있는 물건들을 지퍼백에 주워 넣는다. 이후 내부 세차가 완료되면 지퍼백에 모아두었던 물건들을 재배치한다. 차주가 수납했던 곳에 다시 두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가 생각할 때 주소가 틀린 물건은 재배치한다. 차량 내부에 우산을 두었다면 트렁크로 옮긴다. 이것이 정돈이다. 청소기로 시트의 주름사이, 바닥의 모레 등을 치운다. 이것이 청소다.
세차는 정리수납에서 배운 것들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가끔 어지럽게 잔짐이 가득했던 트렁크를 사용하기 쉽게 수납을 새로 해 드리면 눈썰미 있는 고객은 감사해하기도 한다. 그런 고객들 중에는 이후에 다시 세차 주문을 하여 트렁크를 보면 계속 유지하는 분도 계시고, 도로아미타불이 된 경우도 있다. 생각보다 많은 차주들이 트렁크에 물건을 가득 싣고 다닌다. 정돈 기준 없이 넣고 다니는 분도 있고, 나름 기준을 가지고 수납을 하신 분도 계신다.
스티브잡스가 말한 걸로 기억한다. 점을 계속 찍다 보면 선이 된다고. 점이 무수히 찍혀야 형태를 만들 수 있고, 무수한 점들이 모여 어느 날 선이 되고, 면이 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정리수납을 배우며, 청소를 배우며, 한식조리를 배우며, 한옥목공을 배우며, 가죽공예를 배우며, 마인드맵을 배우며, 버스운전을 배우며 생각했었다. 이게 바로 점이라고...
그런데 이놈의 점찍기가 선이 되지 않는다. 어찌어찌 선이 될 법도 한데. 점을 덜 찍었거나 점을 선으로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단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