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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Nov 11. 2024

세차하면서 알게 된 것들

그래야 니가 살아

회사 생활  21년 차에 퇴사했다. 

회사라는 '그늘', '정글', '울타리'에서 끔찍하게도 자그마치 21년을 보낸 것이다. 그래도 서럽게 등 떠밀려 나온 게 아니라 다행히 스스로 나왔다. 그러나 자금이 마련돼서 내 사업을 하려고 나온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라고 외치며 나온 것도 아니다. 참을성이 없었다면 21년 근속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모든 이유를 한 가지 단어로 압축하자면 '권태'다.


권태가 나를 잠식한 이유가 있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무엇을 해도 '흥미', '재미'가 없었다. 생계수단에 무슨 재미와 흥미를 찾느냐고 스스로 다잡았지만, 결국엔 '의미'조차 없게 느껴졌다.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데 미래까지 불투명했다.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죽기 전 이자성(이정재)에게 한 말이 자꾸 생각났다.


"표정 풀어 18, 누가 잡아먹냐?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x내 반갑다. 

어이 브라더! 너 많이 힘들어 뵌다? 

그러지 말고 인제 고마 선택해라! 

형말 듣고 이 뱅신아 그래야 니가 살아


(숨이 가쁜 황정민에게 산소마스크를 다시 씌우는 이자성에게) 

너! 지금 뭣허냐? 야 이 x새끼야! 

너! 만에 하나, 천만분의 하나라도 

내가 살면 너 어떡할라고 그래, 

너 나 감당할 수 있겠냐?


 황정민 브라더가 자꾸 나더러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것 같았고 

'회사를 계속 다니며 정년을 맞은 나를, 그 무력하고도 몽매한 60대의 나를,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뭐라도 다른 일을 해야 내가 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나이 50줄에 회사를 나가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리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예상하고 나왔건만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예상보다 만만치 않았다. 


일찌감치 자영업을 시작하신 분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소롭겠지만, 나로선 처음 겪는 일이라 매우 낯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뭐든 혼자해라. 그리고 아프지 마라

사업자등록도, 창업 준비도, 출근도, 퇴근도, 점심밥도, 일도 혼자해야 한다. 대화도 머릿속에서 혼자 한다. 그러나 사람 때문에 괴롭지는 않았다. 또 아프면 끝장이다. 병가는 없다. 아파서 일 못하면 수입은 빵 원이다. 그게 무서워 술도 줄이고 컨디션 관리를 철저히 해서 1년 전, 2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건강하다.


퇴직금은 없다. 그리고 돈내고 배워라

따로 떼서 적립하지 않는 폐업을 해도 퇴직금은 없다. 그래서 노란우산 공제에 가입했다. 

또,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고, 물어봐도 그냥은 안 가르쳐 준다. 기본적인 것은 배웠지만 진짜 중요한 기술은 안 가르쳐준다. 일하다 막혀 유튜브, 블로그를 뒤져봐도 정말 중요한 기술은 안 보여 준다. 돈을 내야 가르쳐준다. 회사에서 공짜? 에 길들여진 탓이다.


사기꾼들이 참 많다. 그들도 사업 중이겠지

사업자 번호만 나와도 여기저기서 전화, 문자, 카톡이 온다. '블로그 마케팅 대행', '사업자금 대출', 'cctv+인터넷 가입', '마트 전광판 광고'등등. 다들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하는지. 또한 동기부여는 스스로 해야 한다. 조증이 와도, 울증이 와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도와줄 사람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격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가 내 현실이 됐다. 


회사동료는 사라진다.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회사동료는 회사동료일 뿐이었다. 살기 위해 어쩔 없이 만났던 사람이었다. 이젠 생사고락을 함께하지 않으니 멀어지다가 폰번호가 삭제된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 가상의 친구가 모니터 너머에 있는 것처럼 지금도 주저리주저리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각설하고, 세차의 측면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세차는 기술이라고 보지 않는다. 

가끔 세차 중에 요금을 물어오시는 분이 있다. 가격을 말씀드리면 열에 다섯은 이렇게 묻는다. 


"한 달에요?"

"아니요. 1회 가격입니다. 스팀으로 내부, 외부 세차 가격입니다."


아직도 세차하는 사람들이 배운 게 없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노동이지만 호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해보면 그 생각은 싹 달라질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고, 가끔 셀프세차장에 가서 시원하게 물 뿌리고, 비누거품 범벅된 차에 미련하게도 거친 거품 솔을 박박 밀어 대곤 했다. 세차로 밥 먹고 산지 4년이 되니 세차가 기술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려면 힘들고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일은 세차 외에도 많다. 기술이 아니 것 같지만 정작 해보면 어려운 것들. 청소가 그렇고, 정리수납이 그렇다. 어쩌면 만만히 본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을까 한다.


카매트는 거짓말하지 않는 순정매트가 제일 좋다. 

자동차 바닥에 깔려 있는 매트는, 카펫 재질의 순정매트(신차 구매 시 딸려 나오는 매트)가 제일 좋은 매트다. 돈을 들여서 벌집매트, 코일매트 등을 사서 바닥에 깔지만, 세차를 해보니 순정매트가 제일 좋았다. 순정매트는 흙이나 오염을 그대로 보여준다. 더러워지면 


'나 더러우니까 쫌 치우지?'라며 신호를 준다. 


그런데 여타 코일매트나 벌집매트는 오염물을 가두어 둔 채, 겉으로만 깨끗한 척을 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오염물을 모아뒀다가 자동차 내부가 건조한 상태(땡볕아래 주차)에서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면? 몰래 간직하고 있던 미세먼지와 오염물을 고스란히 차주의 폐 속으로 뱉어낸다. 


여름엔 목적지 도착 전에 에어컨을 꺼야 한다. 

에어컨을 틀었다면 목적지 도착 20분 전부터는 에어컨 작동을 끄고 송풍으로만 10~20분간 틀어서 내부 에어컨 부속인 열교환기(에바포레이터)를 건조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목적지 도착 즉시 에어컨과 시동을 동시에 끄고 내리면? 그리고 이 행동이 수개월 동안 반복되면? 에어컨 내부의 열교환기(에바포레이터)에 맺힌 수분과 각종 먼지가 곰팡이를 일으켜 조만간 에어컨을 틀면 덜 빤 걸레 냄새가 난다. 그리고 근본적인 청소(에바클리닝)를 하지 않고, 멋진 디자인의 방향제를 송풍구에 꽂는다. 


트렁크에는 최소한의 물건만 둬야 한다. 

가끔 차 내부며, 트렁크에도 짐이 꽉꽉 들어찬 차들이 있다. 차 내부의 짐이야 빼서 내부 세차를 하지만 잔짐들이 꽉 들어찬 트렁크는 패스다. 섣불리 꽉 찬 짐을 들어냈다간 감당이 안 된다. 트렁크 내부 청소 후, 내 물건이 아닌데 차주처럼 막 욱여넣을 수도 없고, 파손이나 분실의 우려도 있다. 결정적으로 그걸 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불가피하게 싣고 다녀야 한다면, 큰 백(코스트코나, 이마트 등에서 주는 쇼핑백)을 활용해서 종류별로 담아 둬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잔짐 들을 트렁크에 늘어놓거나 욱여 넣으면 필요한 물건을 못찾고, 청소도 어렵고, 연비도 안 좋다.


세차의 완성은 '틈새'와 '힌지'다. 

세차의 완성은 휠타이어라고들 말하지만, 내가 볼 때 진짜 세차의 완성은 '틈새'와 '힌지'다. 틈새는 자동차 시트의 주름이 잡힌 틈새, 송풍구의 틈새, 문틈새가 있다. 문틈새는 승용차 기준 5개다.(트렁크문 포함). 그 문이 열리고 닫히게 해주는 힌지는 기름때와 외부 오염물의 첫 번째 서식지다. 그리고 의외로 신경을 쓰지 않는 차주들이 많다. 나는 그곳을 정말 열심히 신경 써서 닦아내지만 그걸 칭찬해 주는 분은 잘 없다. 


대시보드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세차를 하러 다니다 보면 대시보드에 갖가지 인형, 피규어, 액자, 십자가, 미니불상, 염주 등을 부착한 차들을 많이 본다. 개인의 취향이니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당장 전방 시야가 방해되고, 청소하기도 어렵고, 급정차 시 흉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생각은 내가 세차 업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십자가 사이로, 피규어 사이로, 휴대폰 거치대 사이로 먼지를 닦아야 하니 번거롭기 짝이 없다. 게다가 잘못 건드려 피규어의 팔이라도 하나 떨어지면? 변상해야 한다. 그래서 대충대충 하게 된다. 


차주들은 자기 차의 상태를 잘 모른다. 

가끔 세차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 중에 이전 고객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세차 후에 자동차 외부에  흠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세차 전, 차량 전체 점검을 할 때 흠집 부분의 비포 사진을 보내드리면 '원래 있던 것'으로 오해가 풀리지만 그만큼 본인 차의 상태에 대해 잘 모른다. 또한 세 차전에 안 보이던 스크레치가 세차 후 선명히 보이기도 한다. 흠집은 미관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깊은 흠집은 추후 녹이 슬고, 점점 번진다. 평소에 자주 차체를 살펴보고 초기에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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