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비자아 조건화의 인식과 이해
휴먼 디자인에 '조건화(conditioning)라는 개념이 있다. 조건화란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다양한 인간이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메커니즘적으로 물리적인 조건화는 '미정'센터에서 일어난다. 정의센터에 비해 고정된 속성이 없는 미정센터는 외부의 영향력을 받아 에너지가 증폭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정센터의 강력한 조건화로 인해 발생한 신체적 병, 심리적 고통 등은 자신으로 올바르게 살기 전까지 치유되지 못한다.
미정센터 외에도 우리를 조건화하는 요소는 사람, 문화, 교육 수준, 환경, 음식, 행성 등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휴먼 디자인은 비자아 산모의 비자아 태교로 인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조건화가 되었다고 말한다. 수정란때부터 이미 조건화가 세팅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휴먼 디자인의 시작은 비자아(not-self)의 철저한 인식과 이해라고 말한다. 비자아는 바로 자신을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다양한 조건화 요소로 말미암아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나마 흐릿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어쩌면 그 시절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도 대면해야 할지 모른다. 어린 시절, 더 나아가 태아 때부터 각인된 조건화를 이해해야 자신만의 다름, 고유함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너무 오랜 동안 나 자신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내 패턴을 인식하곤 소스라치게 놀란 경험이 있다. 이미 아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줄곧 생각은 해왔는데, 실제적으로 그것이 나와 분리되는 듯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수히 무한 반복되어왔던 나의 고질적인 패턴 중 하나는, 수직적 위계(서열)에 따른 등급을 매기고, 내 의견보다 윗사람의 의견에 더 큰 가중치를 두는 패턴이었다. 내 결정권을 윗사람 내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맡겨버리는 패턴 말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스스로 저버리는 패턴을 평생토록 반복 재생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어쩌면 이 패턴은 내 개인적인 패턴이라기보다 우리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공유된 패턴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패턴은 이 땅에서 '안위'와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인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연스럽게 난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을 느낌을 따라 더듬어 올라가 보게 됐다. 어린 시절의 난 지금까지 살아온 것 처럼, 이렇게 순종적인 패턴에 걸맞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기억했다. 어린 시절의 난 반항적 기질이 다분했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고, 어른들의 말에 곧잘 말대꾸도 잘했던 아이였다. 반사회적 기질도 다분했다.
그런데 그러한 기질은 언제나 주변 상황들과 사람들에 의해 매번 꼼짝 달싹 못하도록 억눌렸다. 뭔가 내 의견을 말할때 마다 '그러면 안된다' 고 매번 혼이 났고, '네 생각은 틀렸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그러는 동안 점점 난 주변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으며 스스로 안전하다 여겨지는 패턴에 맞추어 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주변과의 갈등, 잡음을 없애고 조화를 택한 대가로 내게 남은 건 무기력이었다. 난 항상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노심초사하며 숨을 죽이며 살아왔다. 그렇게 내 생명력은 해를 거듭하며 거세당한 듯하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조건화가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으며, 살아가는 동안 그것을 다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지기도 한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하나가 되었던 무한 반복되었던 패턴들을 인식할 때마다 그것과 나를 분리시켜본다. 이렇게 고착된 패턴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진다. 이렇게 조금씩 내 안의 생명력을 회복해본다. 펄떡. 펄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