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사랑과 섹스
사회 분위기상 섹스라는 말 조차도 꺼내기 힘들었던 아주 오래 전 대학시절에 '섹스는 섹스다'라고 주장했던 꽤나 괄괄한 여자 동기생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는 포도주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고 다니던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그녀가 포도주와 빵 말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영혼이니 정신이니 이런 게 아니라, 바로 '섹스'였다.
반면 난 오랜 동안 섹스는 사랑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현재에도 근본적인 기조에 큰 변함은 없다. 난 나와 생각이 다른 그녀에게 나만의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부지불식간에 소리 없는 혐오와 비난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것은 전적으로 섹스에 대한 나의 철저한 오해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다.
바로 '섹스=사랑'이라는 등식에 대한 오해다.
'섹스가 사랑'이라는 게 오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아할 것이다. 그리고 섹스가 사랑이 아니라면 섹스는 도대체 무엇이고,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지 않은가?
휴먼 디자인은 섹스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며 섹스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도 평소에 '섹스가 무슨 사랑이냐' '섹스는 그냥 섹스일 뿐이다'라고 여겨온 사람들도 섹스의 메커니즘을 막상 듣게되면 섹스란 것에 대해서 조금 실망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먼저 섹스의 메커니즘을 알기 위해 섹스와 관련 있는 '몸'에 대해서 살펴보자.
휴먼 디자인 바디그래프(bodygraph)에는 9개 센터가 있다. 그 중에서 온갖 종류의 감정, 분위기, 욕망, 민감함을 느끼는 곳은 '감정센터'다. 감정센터는 인류의 절반이 정의되어 있고, 정의된 감정센터에서 생산되는 감정 파동은 그 어떤 것보다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감정 미정에게는 그것이 훨씬 크게 증폭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위아래로 출렁이며 희망과 고통을 오고 가는 감정 파동의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 속에 저절로 놓이게 된다. 특히 감정센터에서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중에 '이 사람하고 꼭 있어야 해' '저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와 같은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충동, 끌림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이 강렬함의 실체는 다름 아닌 두 사람이 만날 때 생성되는 감정 파동의 '화학물질(chemistry)'이다.
우리는 흔히 잘 어울리는 커플을 가리켜 '케미'가 잘 맞는다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서 '케미'는 두 사람의 화학물질이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의미다.
즉 섹스는 감정 파동의 화학물질이 연출한 감정센터의 산물일 뿐이다. 감정센터의 산물인 섹스는 감정적 흥분, 감정적 오르내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삶에서 서로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경험들은 언제나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충동으로 느껴지는 강렬함으로 느껴지기에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너무나 쉽게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즉 이렇게 강렬한 감정적 경험들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섹스가 사랑이라는 등식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인간의 섹스는 전적으로 감정에 의해서 지배되며, 인간의 섹스는 감정센터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적 스파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섹스는 사랑이 아니다. 단지 사랑으로 착각될 뿐이다.
섹스에 대해 로맨틱한 환상을 품었던 사람들이 더 실망스러워할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이성 간의 '사랑'이라고 간주해오던 성(sexuality) 은 유전자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삶을 살도록 명령하는가에 대한 문제, 즉 유전적 긴박함(genetic imperative)의 문제다.
즉 섹스의 근본적 실체는 유전자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유전적 필'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몸에 있는 유전자의 제1 미션은 바로 이것이다. '더 많이 섞여서, 더 많이 창조하고, 더 많이 생산하라'. 한 마디로 말해서 멸종되고 싶지 않으면 '번식(reproduction)'하라는 것이다.
오로지 종의 번식을 위해 작동하는 유전적 필요는 '다양성'과 '다름'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끌어당긴다.
서로 다른 것에 충동적으로 끌리는 유전체는 그냥 설레고 흥분되고 충동을 느끼면 그만인 것인데, 이러한 유전자의 충동은 모르는 사람과도 잠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러한 유전자의 미션이 없었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결코 지금처럼 이토록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전자가 우리 몸에서 이러한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동안, 정신적 수준에서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느끼게 된다. 또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나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다'라는 수동적 표현을 곧잘 쓰게 된다.
결론적으로 섹스는 우리 몸에 기계적으로 각인된 유전적 역할이다.
서로가 연결되는 몸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리 모두에게는 항상 연결될 무언가를 찾고 있는 수용체(receptor)가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수용체'가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열려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connection)은 이와 같은 유전적 수용체(genetic receptor)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아우라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다양한 방식(the way we connect to eacht other)에 따라서, 누군가와는 '강한 끌림'을, 누군가와는 다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와는 친구처럼 편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즉 우리가 맺는 다양한 관계는 유전적 구성 방식(genetic makeup)에 따라 관계의 특질이 결정된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상영하고 있는 삶이라는 드라마 배후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우라를 통해 작동하는 '유전적' 메커니즘 그 자체다.
게다가 몸에서 유전자가 하는 일은 우리가 마인드로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무관하며 또한 의식적으로 알 수도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성은 마인드로 통제할 수 없는 '메커니즘'의 영역이다.
즉 인간의 성(sexuality)은 윤리적인 영역이 아닌, 몸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적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일생에서 사랑을 빼고 논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할 정도로, 사랑만큼 인간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할때, 인간의 몸이 하는 중요한 행위중 하나인 섹스를 막상 메커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니 너무 무미건조하게 여겨지면서 맥이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과거에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