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여성 매니페스터의 조건화
휴먼 디자인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타입(type)이었다. 타입은 휴먼 디자인의 최핵심 개념으로, 우리 몸에 있는 아우라의 특성에 따라 매니페스터(Manifestor), 제너레이터(Generator), 프로젝터(Projector), 리플렉터(Reflector)의 네 가지 타입으로 분류된다.
위 네 가지 타입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처음 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는 '난 확실히 매니페스터는 아니다', 또 하나는 '아마 난 프로젝터일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휴먼 디자인 차트를 뽑았는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챠트에 나타난 내 타입은 '매니페스터'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매니페스터 일리는 없어. 아마도 내 생시정보가 잘못됐겠지. 생시 보정 서비스를 받아서 확인 해야겠다'. 그러곤 진짜로 생시 정보가 달라지길 내심 기대하며 생시 보정 서비스를 받았는데 내 생시정보는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기대와 다르게 난 여전히 매니페스터였다.
이렇게 처음 내가 매니페스터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난 내가 매니페스터임을 극구 부인했다.
처음엔 휴먼 디자인이 주는 정보들에 그리 개의치 않았다.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어느 부분은 맞을 수도, 어느 부분은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참고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휴먼 디자인을 통해 알게됐떤 나에 대한 정보들이 조금씩 실생활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현실과 기가 막히게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끔씩 '끔찍하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쇼크'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난 내가 그렇게 극구 부인했던 매니페스터임을 실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전 인류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제너레이터 세상에서 제너레이터로 살도록 완벽하게 길들여지고 조건화되어 성인이 된 나는, 그 누구보다도 제너레이터처럼 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전 인류의 8%밖에 되지 않는 매니페스터는 사실상 소수자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더욱 더 제너레이터와 잘 어울리며 조화롭게 지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열려있고 친절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을 다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와 보니 그렇게 열심히 잘 살아보겠다는 나의 부단한 애씀과 성실했던 노력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한 처. 절. 한. 몸. 부. 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난 정말 남을 밀어내는 매니페스터의 견고한 아우라를 가졌고, 내가 정말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 할 때 그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 ‘자유’뿐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인식할 수 있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다고 생각한 전부 역시 나를 간섭하고 가로막는 소위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뿐, 다른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먼저 시작하고 행동해야만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내 머리가 아닌, 내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난 내 몸에 항복(Surrender)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항복’이라는 말이 참으로 적절하구나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매니페스터인 '여성'에게는 ‘여성’이란 수식어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래서 여성인 매니페스터는 종종 '여성' 매니페스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관찰해보면 제너레이터나 프로젝터인 여성에게는 굳이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굳이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일반적인 일이기는 하다. 일반적으로 '여성' 임원, '여성' 장관,'여성' 대통령 등 기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고위 직책에 진출한 여성에게 '여성'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임원, 대통령, 장관 등은 여성들이 갖기에 어울리는 일반적인 역할은 아니라는 깊고도 오랜 고정관념이 있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매니페스터 타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여성인 매니페스터에게 '여성' 매니페스터라고 무의식 중에 부르게 되는 것은, 매니페스터 타입이 여성들이 갖기에 어울리는 적절한 타입은 아니라는 깊고도 오랜 고정관념이 있다는 반증이다. 즉 닫혀있고(closed) 밀쳐내는(repelling), 얼핏 듣기에 아름다운 느낌이 느껴지지는 않는 매니페스터의 아우라는 남성에게나 어울릴법한 것이지, 여성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라는 깊고도 오랜 고정관념이 있음에 대한 표식인 것이다.
관찰 결과, 남성의 경우 본인이 매니페스터임을 알게 되면 대부분 반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목격했다. 오히려 본인이 매니페스터임을 반긴다. 반면 여성들은 내가 그랬듯이 스스로가 매니페스터라는 사실을 불편해하고 있음을 상당 부분 목격할 수 있었다.(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관찰 결과다.) 아마도 매니페스터 타입이 갖는 역할이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몹시도 상충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나는 '여성' 매니페스터로서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내적, 외적 딜레마로 인한 긴장을 갖게 되었다.
내 몸이 매니페스터의 작동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한 이후부터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짜증이 시시때때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표면상 ‘극도의 답답함’ 정도로 인식되었지만 내 내면 깊은 근원에는 뿌리 깊은 '분노'가 있었고, 난 그 분노조차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왜 지금 자유롭지 못할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저장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의 기억은 ‘여성’으로서의 피해 의식이 전부였고 그 기억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 어린 시절
난 꽤나 보수적인 종갓집에서 1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요즘 세상에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집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을 구호처럼 외쳤고, 난 ‘여자가’라는 소리를 매번 입버릇처럼 들어야 했다. 우리 엄마는 아들인 종손을 낳아 종부로서 집안의 대를 이어야 했고, 언니 2명도 모자라 세 번째로 이 세상에 나온 여자 사람인 나는 당연 태어날 때부터 천덕꾸러기였다. 나와 남동생 도시락 반찬의 질은 사뭇 달랐고, 나는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유치원이란 곳에 내 남동생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최고가는 유치원에 버젓이 다니곤 했다. 이런 탓에 한동안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게도)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는 게 숨기고 싶은 과거 중 하나였고, 이것은 마흔이 다 되어서야 겨우 겨우 치유될 수 있었던 나의 깊은 트라우마이기도 했다.
- 직장에서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이런 ‘여성'에 대한 피해 의식은 유독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적 문화가 지배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해만 갔다. 여성으로서 아주 당연시되는 여러 종류의 비합리적인 피해를 겪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놀라운 사실은, 내가 이런 종류의 피해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합리적 수준에서 정당한 보상을 요청했거나 나를 충분히 PR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조차, 난 정말 어이없게도 겸손과 배려가 지나치고 성실하기 그지없는 착한 여자 직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좋아라 하는 매니페스터로서의 실행력은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이 역시 너무 쉽게 이용 당하기 일쑤였다.
과거의 기억 그러나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도 한 크고 작은 기억들로 인한 후유증이 나를 계속 피해 의식 속에 머물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 의식으로 인한 뿌리 깊은 분노는 내 삶에 '무기력'으로 빈번히 나타났고, 이 무기력함은 대부분 나의 시간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적당히 맞춰주는 삶을 살아가게 했다.
우리에게 뿌리 깊게 주입되어 이미 익숙해져 버린 관습, 생각, 신념 등과 같은 정보에 종속된다는 게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을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다니! 조건화(conditioning)의 힘이라는 게 실로 놀랍게 다가왔다.
오래 전, 왜곡된 배움으로 일그러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들의 삶을 매우 흥미롭게 고발한 EBS 다큐 프라임 6부작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를 시청한 기억이 난다. 최종회인 6부에 소개된 Y대 철학과 교수님의 강의와 20대 초반 남학생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과연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건가,
아니면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 나는 이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