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Jul 22. 2020

우울감에 대한 재조명

[나와 우주의 미스터리]24. 우울과 창조 ②

(이전 글 : 우울과 창조 ① - 우울감에 대한 부정적 인식)


■ 우울감은 화학물질 그 자체다  


그렇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우울감을 '우울증'이라 일반화하여 바라본다. 그리고  이를 현대인들의 정신질환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우울감을  '질환'으로 치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또한 언제든지 우울감이 엄습할 수 있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잠재적 환자로 치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우울증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점검해보기 위해 휴먼 디자인이 말하는 '우울감(melancholy)'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휴먼 디자인은 메커니즘적인 관점에서 '우울감'을 설명한다. '우울감' 역시 인간이라는 기계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일부라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울감은 단순히 화학물질 그 자체다(melancholy is simply a chemistry).


인간은 본래 끊임없이 '진화'를 하도록 설계되었고, 창조적인 진화를 위해서는 '변이(mutation)'가 필요하며, 변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즉 이 우울감은 모든 '창조적 진화의 원천'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모든 창조와 혁신은 깊은 우울감없이는 잉태될 수 없다.


즉 우울감은 창조적 진화를 위한 화학적 자극(mutative chemistry)이다.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우리는 이 화학물질을 결코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의 주된 특징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우리는 우울감이 언제 나타날지 그때를 결코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움직임도 결코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우울감을 애써 감추고 부정하려는 선한 노력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선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자신과 주변을 아주 쉽게 파괴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평생 지속되는 화학적 스트레스다.


그러므로 '왜 나는 이토록 우울한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 해명하려고 애써서는 안 되며, 우울하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여기며 적대시해서도 안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의지로 통제 불가능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 우울감에 대한 오해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우울증'은 우울감 자체에 대한 수많은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 우울감 자체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오해', 그리고 우울감은 모두 나쁜 것이고 고쳐야 할 어떤 것이라는 '오해'가 대표적이다. '자기혐오' '죄책감' '수치심' 등은 모두 이러한 오해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즉 우울증은 우울감에 대한 수많은 오해로 말미암아, 우울감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천재라고 불렸던 수많은 거장들이 우울감에 대한 엄청난 무지, 오해로 극심하게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것 역시, 이미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 종현군의 유서에도 이러한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나를 미워했다. 끊기는 기억을 붙들고 아무리 정신 차리라고 소리쳐봐도 답은 없었다".


■ 우울의 가치, 우울감에 대한 재조명

우울감은 치유해야 할 병이 아니다. 우울감은 말 그대로 '우울하다는 느낌' 자체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치유해야 할 것은 우울감이 아닌, 우울감을 문제시하는 우리의 '시선' 그 자체다.


그동안 우리에게 우울감은 지독하게 폄하되어 저평가되어 왔다. 이제는 밝고 유쾌하게 웃으며 행복한 것만 정답이고, 그렇지 못한 것을 사회적 문제나 병으로 바라보는 근본적 관점 자체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즉 '우울의 가치'에 시선을 돌려 우울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앞서 휴먼 디자인에서 말하는 우울감은 창조적 진화를 위한 '화학적 자극(mutative chemistry)' 자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예술가와 우울증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깊은 우울감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른바 '우울감과 창조'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도 했다.


즉 우울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창의적인 상상력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창조는 우울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우울감은 예술가의 필수조건이며, 우울감이 천재들의 특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우울감이 문제 해결 능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깊은 우울에 잠긴 사람들이 외부적 자극을 최소화하여 자기 성찰에 깊게 빠지게 될 때, 정신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여 딜레마와 같은 복잡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석력을 높여준다는 내용이다.


이 사실들을 모두 종합해보면 우울감은 나를 갉어먹고 집어삼키는 괴물이 아니라, '우울감'은 나만의 창조적 여신(creative muse)을 만날 수 있는 창조적 공간(creative  space)이며, 창조적 에너지(creative energy)다.


즉 우울감은 내 안의 깊은 예술성, 천재성을 일깨워 줄 창조적 도구인 셈이다.


■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왠지모를 우울이 만연한 사회다. 가면 갈수록 무한 경쟁으로 점점 내몰리고,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팽배해진 개인주의로 타인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진다.  앞으로 별다른 희망도 찾을  없는 이러한 상황들은 계층과 세대를 막론하고 고독함, 우울함, 외로움, 공허함으로 우리를  내몰지도 모른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고 누군가 말하더라. 이렇게 시선을 살짝만 바꿔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러니 우울감은 나쁜 것이나 고쳐야 할 병이 아니라, '창조적 에너지'를 가져오는 '화학물질(chemistry)' 자체라고 시선을 돌려보자.


만일 창조니 천재니 화학물질이니 하는 이런 말들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


오랫동안 우울한 것이 내 잘못이라고 스스로에게 참 모질게도 채찍질했던 과거의 나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