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8월의 아침

by 남궁인숙

오랜만의 출근이었다.

장마철의 흔적은 어린이집 화단 곳곳에 남아 있었다.

며칠 사이 무성하게 자란 풀들,

텃밭에 심어두었던 상추는 키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시들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장대처럼 뻗은 줄기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이리저리 쓰러진 모습은

마치 잠시 자리를 비운 공간의

숨결이 흩어진 듯한 풍경이었다.

마치 빈집의 장독대 옆에 자라난 풀들처럼,

조금은 쓸쓸하고 어지러운 기운으로

현관 앞을 채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런 현상이 포착되지

않나 보다.


출근을 하자마자 장갑을 끼고 화단 정리에 나섰다.

텃밭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비운 자리는 어김없이 무언가가 자란다.

그것이 곧 생명이든, 혹은 풀처럼 감정의 흔적이든.

등원길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땀을 뚝뚝 흘리면서 화단을 정리했다.

다시 ‘일상’의 자리를 되찾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진수할머니가 진수와 등원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셨다.

"원장님, 출근하셨네요?

휴가 다녀오셨다면서요?"

자세히 묻지 않으셔도,

그녀의 말속에는 지난 며칠 동안 원장의

빈자리를 유심히 지켜보셨던

관심과 염려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분은 나의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 진수 할머니. 저 휴가 잘 다녀왔어요.

어서 오세요.”

그리고 진수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진수할머니는 진수를 어린이집 현관에서 담임선생님께 인계하고 나오면서

다시 내 등 뒤에다 대고 또 한마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님이 계시니까 좋아요."


ㅎㅎ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단, 책임의 무게를 상기시키는 말처럼 느껴졌다.

진수할머니는 전직 유치원 원장으로,

'원장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녀는 교직원들의 태도는 원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다르다며 , 원장은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당부도 여러 번 있었다.


사실 나는 그 말에 조심스러웠다.

"저는 우리 교직원들을 믿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괜한 반박처럼 들릴까 봐 그냥 미소로 넘겼다.

나의 침묵은 반박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그분의 경험과 생각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우리 교직원들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이집은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곳이다.

그 속에서 소리 없이 흘리는 땀방울이야말로,

아이들의 하루를 진짜로 지켜내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름 장마가 남긴 풀을 뽑으며 문득,

조용히 자란 풀도 누군가의 시야를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자리를 지킨다’는 건 단지 몸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마음을 다해 머무는 일이다.


풀 한 포기 뽑는 일로 시작된 이 아침.

나는 오늘도, 그렇게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래서 내 눈에는 길게 자란 화단의 풀들이 지나쳐지지 않는 것이다.



https://suno.com/s/xeRLY6h3QO8mJnZT



마음으로 출근한다


작사: 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장마 끝에 자란 풀

잠시 비운 자리의 숨결

상추꽃은 피고 시들어

현관 앞을 흐리게 물들인다


장갑 끼고 엎드린 아침

아이들 웃음 사이로

나도 조용히 말하네

"다시 시작이구나"



나는 오늘도 마음으로 출근한다

한 줄기 햇살처럼

누군가 지켜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온기를 남긴다

내가 있는 이곳이

누군가의 하루가 되니까


2절

진수 할머니 말하시네

"원장님이 계시니 좋아요"

그 말엔 수많은 뜻들이

고요하게 스며 있었다


믿고 싶은 나의 사람들

보이지 않아도 일어나는 일들

말없이, 묵묵히, 아이들 곁에

우리는 늘 그렇게 있다



나는 오늘도 마음으로 출근한다

잠든 풀잎을 쓰다듬듯

누군가 지켜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온기를 남긴다

내가 있는 이곳이

누군가의 하루가 되니까



그저, 마음으로 출근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 작은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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