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받은 땅을 팔았다.
기억이 닿는 한, 나는 그 땅이 평생 내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왔다.
수익성 때문이 아니라, 그 땅에는 시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시간, 성장의 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속감 같은 것들.
그러나 삶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묻지
않는다.
삶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나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 땅을
팔기로 결정했다.
계약서를 법무사 사무소에서 작성하였다.
긴장된 기류는 없었으며, 겉으로 드러난
갈등의 흔적도 없었지만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침묵이 언제나 평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 침묵은 무게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내 이름을 쓰는 행위는 거래라기보다,
미뤄두었던 하나의 결말에 가까웠다.
매수인은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 땅을 일궈온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스무 살 후반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말을 꺼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창업·정착 지원
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농촌에 정착하는 청년들에게는 20년 장기,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제도를 통해, 그는 마침내 오랫동안
아버지가 소작해 온 그 땅을 직접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얼굴이 상기되어 말했다.
이 땅은 나에게는 상속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기반이었고,
그의 아들에게는 시작이었다.
그의 아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빚을 갚아야
해서 막막하다고 했다.
나는 “20년, 금방 간다. 잘했다.”라고
말해줬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보름달처럼 크고, 계산 없는 미소였다.
그것은 이익의 미소가 아니라,
미래 앞에 선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의 불편함은 다른 형태로
옮겨갔다.
땅은 이제 분명 나를 떠났다.
젊고, 그 자리에 머무를 의지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곳에 남기로 선택한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가장 솔직한 형태의
평온이리라.
지금 그 소작농은 노인이 되었다.
그는 아들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 아들이 농지를 매입한다는 말을 했을 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부자네, 부자야.”
농촌에서 땅을 산다는 건 여전히 부의 상징이다.
그 집의 큰아들도 마흔을 넘겼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혼자 산다고 했다.
농촌에 와서 결혼해서 살 여자가 없다고 했다.
큰아들은 태양광 발전 시설을 갖추고,
그것을 임대해 매달 약 300만 원이 월급처럼
통장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놈은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와.”라고 하였다.
그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풍경인 것
같다.
농사도 이제는 예전처럼 어렵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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