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 마음을 알아줄까? 엄마라는 존재는 아기의 울음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 줄 수 있다.
그것은 아기를 뱃속에서부터 마음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고 낳은 엄마의 숙련된 감(feeling)으로 하는 행동일 것이다.
엄마의 이러한 행동이야말로 갓난아기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아기는 매사에 울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아기의 울음은 생존을 위해서 소리 내는 행동이다.
배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어 엉덩이가 축축하거나, 마음이 불쾌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그때그때 다른 울음소리를 낸다. 다만 엄마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바로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엄마는 대충 눈치채고서 젖병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까꿍놀이를 하면서 엄마는 너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표시한다. 그것이 양육의 스킬이다.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는 이처럼 엄마의 생각대로 하는 것은 아이를 향한 에로스적인 관계를 갖는 엄마의 강한 의식으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서 유년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애착관계와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토대로 무의식에서 투영되는 영유아기의 부모에 대한 감정을 말한다.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은 리비도(성)의 발달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 활동과 신체 활동의 모든 근원을 리비도의 발달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추종자 아들러와 칼 융을 떠나보내게 했던 학설이다.
본능(id)은 무의식의 세계를 인간 행동의 근원으로 삼았다. 자아와 초자아를 출발시켜 무의식이 의식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심리학자 구스타프 칼 융은 둥근 원으로 마음을 표시했다. 인간의 정신 속에는 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혼은 자아의식을 넘어서는 힘이고 능력이다. 이런 것들이 인간의 무의식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의식과 무의식,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 의식의 세계에서는 나, 에고가 있다. 무의식의 세계는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self(자기) 이렇게 나눠서 설명한다.
우리의 정신은 심리적 복합체인 '콤플렉스'로 이루어져 있고,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원형(archetype)이라고 불렀다. 칼 융은 인간의 무의식에는 독자적인 인격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집단 사회에 적응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외적 인격, 페르소나는 무의식적 인격, 즉 사회적인 인격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개념들이 상호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상호 관계를 맺고 있고 그 개념들의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정적인 개념이 아닌 쉼 없이 변화되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다.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시 각각 변화하므로 그 모습을 추상적이라고 느낀다. 자연의 모습은 추상적이어서 머릿속에만 존재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고 우리 마음도 그것을 볼 때마다 달라진다.
사람마다 시간차에 따라서 자연을 대하는 경험이 다르므로 개념화 하기는 더 어렵다.
칼 융은 무엇이든 쌍(커플)을 이루고 하나가 있으면 그 반대에 또 다른 하나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니무스가 있으면 아니마가 있고, 개인 무의식이 있으면 집단 무의식이 있고, 내향성이 있으면 외향성이 있고, 음양이 있고 짝을 이루면 다시 하나가 되어 전체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좋고 나쁨은 음양과 선악의 구분이 아니라 선이 악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상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원의 양쪽 끝에는 극이 보이는데 원의 어느 쪽에서나 볼 수 있는 극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융은 구조를 이야기하고 그 구조가 영혼이라고 한다. 영혼은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 모든 곳에서 유전자를 통해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구조가 있다. 그것을 바로 '원형'이라고 한다.
결국 마음은 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뇌 외부의 주변인과 관계를 맺고 작용할 때 마음은 관계를 품는 작용이고, 타인과 서로 작용하는 역동성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동화와 조절 작용을 말한다.
천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인력이나 관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힘, 무의식의 힘을 다룬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여러 가지 힘이 대립되기에 무의식적인 마음의 움직임이 생긴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상호작용의 역동성을 지녀야 마음이라는 것이 생긴다.
나무는 주변 환경에서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여 성장하는 데, 빛을 받아들이기 쉬운 방향으로 가지를 뻗고, 물을 얻기 쉬운 방향으로 뿌리를 내린다. 환경에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고 안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자신의 신체활동을 환경에 맞추는 것이다.
마음은 뇌 안에서 일어나는 나의 주관일 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주관과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세상이다. 각자의 전두엽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과 깊고 넓게 끊임없는 관계 맺기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