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설날

by 남궁인숙


설날 아침에 받아 본 한국 현대시,

시인은 김이듬이다.

김이듬은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에서

강렬한 여성 화자와 파격적 이미지, 신체성,

정치성을 전면에 내세운 시인이다.

처음 「날마다 설날」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이 시(詩)는 너무 획기적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김이듬의 시가 ‘획기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표현이 강렬해서가 아니라,

여성 화자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방식

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서정시는 감정을 정제하고

미화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날마다 설날」은 술에 취해 쓰러지고,

결심을 사흘 만에 파기하고,

사랑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말을

다시 뒤집는 장면은 절제의 미덕을 찬양해

서정적인 전통을 비틀었다.


김이듬의 시에는 순응적이거나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니었다.

대신 욕망하고, 방황하고, 상처받고,

분노하는 능동적 화자가 중심에 서있었다.

사랑을 통제하지 않는 여성,

자기 파괴적 충동까지도 숨기지 않는 여성,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는 여성,

점이 페미니즘적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올해는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리/

올해는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리/

계획을 세운 지 사흘째/

신년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쓰러졌다/

열세 살 어린 여자애에게 매혹되기 전

폭탄주 마셨다/

천장과 바닥이 무지 가까운 방에서 잤다/

별로 울지 않았고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 세우고 날마다 새로 부수고/

내 속에 무슨 마귀가 들어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주문을 외는지/

나는 망토를 펼쳐 까마귀들을 날려 보낸다/

밤에 발톱을 깎고 낮에 털을 밀며/

나한테서 끝난 연결이 끊어진 문장/

혹은 사랑이라는 말의 정의(定義)를 상실한다//


설날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서럽고 원통하고 낯선 날들로 들어가는

즈음/

뜻한 바는 뺨에서 흘러내리고/

뜻 없이 목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일은/

백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어려운 이성의

횡포/

수첩을 찢고 나는 백 사람을 사랑하리/

무모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마실 수 있는 때까지 마셔보자고 다시 쓴다.”


-김이듬, '날마다 설날'-




김이듬의 「날마다 설날」을 여성서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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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빛에서 질문을 읽고, 그들의 침묵에서 마음의 언어를 듣고, 어린이집 현장에서의 시간과 심리학의 통찰로, 아이들의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여행을 통해 예술을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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