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관계의 습도 차이

by 남궁인숙

여자는 빨래처럼 눅눅해 있다.

비를 맞은 것도 아닌데, 괜히 무겁고,

잘 마르지 않는다.

햇볕이 분명 비쳤는데도, 어딘가 속까지

스며든 물기가 빠져나오지 않는다.


반면 남자는 뽀송하게 말라 있다.

바람을 잘 타는 사람처럼,

금세 털어내고 가볍게 일어선다.

어제의 말,

지난밤의 표정,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 갈등까지도

금방 증발시킨다.

마치 처음부터 젖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같은 시간을 통과했는데,

왜 그들은 다른 촉감을 가지고 서 있을까.

관계에는 온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습도’가 있다.

온도는 순간적으로 올라가고 내려가지만,

습도는 오래 남는다.

감정이 증발하지 못하면 공기 중에 머물러

그들을 무겁게 한다.


여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루를 산다.

그래서 자꾸만 생각이 길어지고, 말은

짧아진다.



남자는 다르다.

남자는 감정을 정리하는 속도가 빠르다.

문제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고,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

남자에게 감정은 처리해야 할 사안이지,

오래 품어야 할 체온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남자의 어깨는 늘 가볍다.


여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 젖어 있는데,

남자는 이미 다음 계절에 가 있다.

처음에는 남자가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마를 수 있을까.

상처도,

서운함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른다는 것은 때로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눅눅함은 불편하지만,

그만큼 깊이 스며 있었다는 증거이다.


감정이 오래 남는다는 건,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누가 옳으냐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은 서로 다른 ‘건조한 시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여자는 아직 바람이 더 필요하고,

남자는 이미 햇빛을 다 쓴 사람이다.


어쩌면 관계란,

상대를 여자처럼 젖게 하거나,

여자를 남자처럼 마르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습도를 인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여자는 오늘도 조금은 눅눅하지만,

이 습기가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젖어 있다는 건,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https://suno.com/s/R0Ni8s378a0EMZjh



관계의 습도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

나는 비 맞은 빨래처럼

창가에 조용히 매달려

햇살이 와도 잘 마르지 않는

어제의 말들에 젖어 있어


너는 바람을 잘 타는 셔츠처럼

툭 털고 가볍게 웃지

같은 밤을 지나왔는데

왜 나만 아직 축축할까


우우우우

나는 아직 물기를 품고

너는 벌써 계절을 건너

같은 시간 속에 있었는데

우리의 온도는 달라

마르지 않는 이 마음이

혹시 사랑의 증거일까


2

나는 접히지 못한 채로

기억 위에 펼쳐져 있고

너는 이미 서랍 속에서

다음 하루를 꺼내 입지


젖은 채로 남아 있는 건

미련인지 진심인지

말라버린 네 어깨 위엔

아무 흔적도 없네


우우우우

나는 아직 물기를 품고

너는 벌써 햇살 같아

같은 장면을 함께 봤는데

다른 결말을 살고 있어

마르지 않는 이 마음이

끝내 나를 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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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빛에서 질문을 읽고, 그들의 침묵에서 마음의 언어를 듣고, 어린이집 현장에서의 시간과 심리학의 통찰로, 아이들의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여행을 통해 예술을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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