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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Jan 18. 2024

사는 맛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나이를 먹어도 센티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눈이 온다고 알려주면서 눈 오는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눈이 온다는 것을 문자로 알려주는 사람도 있고, 모처럼 안부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모두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퇴근하려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커다란 창문이 있는 곳에서 함박눈을 보면서 차 마시는 '번개모임'을 하자고 하였다.

시간도 많이 있어서 나는 주저 없이 Okay!

 문자로 보내준 장소에 도착하니 번개모임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였다.

마치 정기모임처럼 번개모임에 시간도 정확히 모두 모였다.

'오늘 A가 번개모임 갖자고 안 했으면 이 사람들은 오늘 뭘 했을까?'하고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만난 장소는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오래 있지 못한다고 하였다.

장소를 옮기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호수를 따라서 눈 맞으며 자고 하였다.

우리는 서로 팔짱을 끼고 우산을 펴고 하나둘씩 짝을 이뤄 걷노라니 오는 친구들과 함께 이렇게 걸어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여고시절을 제하고는 이렇게 눈 오는 길을 걸었던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산책하고 우리는 창 넓은 호프집에 자리 잡고 앉아 어묵탕과 치킨을 시켜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거니 받거니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나 조금 아쉬웠다.

 한 친구가 자기 집에 가서 와인을 마시자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주저 없이 친구집으로 장소를 옮겨서 와인을 따고, 치즈를 잘라놓고, 제법 분위기를 내면서 주제가 다른 수다삼매경에 새롭게 빠져들었다.


  맛있는 술 또는 좋은 술을 표현할 때 '잘 익었다'라고 표현한다.

술이라는 것은 고급진 맛을 내기 위해 잘 숙성되는 시간과 산패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친구사이도 좋은 관계로 잘 무르익으려면 숙성될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질 좋은 향기가 나고, 단내 나게 잘 익어간다.

술이 향기가 있듯이 사람도 향기가 있어야 하고, 멋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티 나는 인생의 향기는 천혜향처럼 멀리 퍼져나간다.


 술을 과하게 마시면 독이 되는 것처럼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비난하거나 친구의 약점을 찾으려고 한다면 혀의 칼로 독을 나누는 게 된다.

반대로 친구의 품성을 좋은 면을 보려고 하고, 잘한 일에 과감 없이 칭찬할 수 있어야 막강한 면역체계를 가진 마누카꿀처럼 유해균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


 갑자기 만난 번개모임이었지만 술도 적당히 마시니 인생이 즐겁고 행복해졌다.

날씨 하나로 의기투합하여 친구들과 이렇게 소소한 행복으로 천지에 향기를 날리면서

아름답게 사는 것이 사는 맛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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